21 정점태(鄭点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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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1978년 4월 27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경산군 고산면
효녀(孝女) 정점태(鄭点泰) 21세

정점태양(鄭点泰孃)의 어머니는, 6년전(年前)부터 정신질환(精神疾患)으로 밤이나 낮이나 병상(病床)에 누워 있는 몸으로서 일찍부터 그의 마음을 울려 왔다.

천진난만(天眞爛漫)한 소녀(少女)떄 부터 그 녀(女)의 효심(孝心)은 지극(至極)하여, 6년(年)을 하루같이 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와 가사(家事)일 을 도우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오빠 집에 기거(起居)하고 있는 그는..한편으로는 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 에 힘쓰며 또 한편으로는 가사(家事) 일을 알뜰히 도우면서 꿈 많은 소녀시절(少女時節)을 효행(孝行)으로 대신(代身) 이어갔다. 

정신병환자(精神病患者)를 돌보는 일이란 말이 쉽지 행동(行動)에 옮기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로써, 그 자신(自身) 처음 간호(看護)임(臨)할 때는 무척이나 괴로웠지만 어머니를 다시 소생(蘇生)시키고야 말겠다는 그의 굳센 집념(執念)이, 그 괴로움을 이기고 난 후(後)부터는 일편단심(一片丹心) 뜨거운 정성(精誠)과 따뜻한 보살핌으로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다정(多情)했던 친구(親舊)들은 모두 고등학교(高等學校)문(門)을 두드렸지만, 정양(鄭孃)은 진학(進學)의 꿈도 포기하고 어머니의 수족(手足)의 되어 왔는데, 가장 괴로운 일은 기분 내키는 대로 온 방안에다 용변(用便)을 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始終一貫) 웃음으로 어머니를 달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방안을 다시 깨끗하게 치워 놓곤 하였다. 

그뿐 아니라 조석(朝夕)으로 밥도 한 숲 두 술씩 떠먹여 드려야 하는 고역(苦役)도 뒤따랐지만, 그는 한결같이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끼니 때마다 정성(精誠)껏 시중들어 왔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감정(感情)이 소멸(消滅)된 식물인간(植物人間)처럼, 정양(鄭孃)의 따뜻한 보살핌도 외면(外面)한 채, 날이 갈수록 병세(病勢)는 더욱 악화(惡化)만 되어갔다. 

거기다 간혹 광기(狂氣)까지 겹칠 때는, 그 자신(自身)도 정신분열(精神分裂)이라도 일어나는 듯한 착각(錯覺)에 빠져들기도 했다 한다. 

그럴 때마다 정양(鄭孃)은 "나뭇가지 고요하려 하여도 바람이 아니 그쳐 주고, 자식(子息)이 봉양(奉養)하여도 어버이 아니 기다려 주시네."라는 "수욕정이풍불지(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의 시구(詩句를 입 속으로 외면서 인내(忍耐)하고 또 인내(忍耐)한다는 것이다. 

품팔이 일꾼으로서 겨우 연명(延命)해 가고 있는 그의 오빠의 처지(處地)로서는, 맛있는 음식(飮食)이나 좋은 약(藥)한 번 써 볼 수 없는 입장(立場)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정양(鄭孃)은, 간혹 들판으로 뛰어나가 그 자신(自身) 품팔이를 해서 번 몇 푼의 돈으로 어머니를 대접(待接)해 드린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精神疾患)에 좋다는 약(藥)들을 구(求)해다가 달려 드리는 등 눈물겨운 간호(看護)의 손길을 늦추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언어장애(言語障碍)가 있는 어머니에게 재미있고 구수한 동화(童話)를 읽어 주는 그의 갸륵한 효성(孝誠)에, 마을 부인(婦人)들도 감동(感動)하여 그와 함께 눈물 지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무엇하러 동화(童話)를 읽어 주느냐?"라고 동리(洞里) 아낙네들의 물음에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은 몰라도 딸인 내 말만은 알아듣는다."라고 대답(對答)하는 정양(靜孃)의 표정(表情)은 밝기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