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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순(李琪順) 여사(女史)의 결혼생활(結婚生活)은 너무나 불행(不幸)을 안고 시작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던 것이, 막상 결혼(結婚)하고 보니 남편(男便)의 지능(知能)은 열등아(劣等兒)에도 미치지 못하는 천치바보였다.
그뿐이 아니라, 가난도 밑바닥을 감돌 정도(程度)로 비참(悲慘)하였고, 거기다 또 시(媤)동생과 시(媤)누이 등이 몹시 고통(苦痛)스럽기만 한 혹 덩이였지만, 그러나 남편(男便)의 안타까운 처지(處地)에 비(比)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남편(男便)이 오죽이나 바보스러웠으면 동리(洞里) 어른들까지 남편(男便)만 보면 바보하고 놀려댔을까.
이여사(李女史)는 남편(男便)을 생각할 때마다 생(生)의 의욕(意慾)을 잃을 정도(程度)로 앞이 캄캄했지만, 모든 것이 하늘이 맺어 준 인연(因緣)이라 자위(自慰)하면서 그를 하늘처럼 섬겼다.
우선(于先) 당장 급(急)한 것이 온 식구(食口)의 연명(延命)책(策)이었는데, 그 여(女)는 체면(體面)과 위신(威信)등은 훌훌 벗어 던지고, 닥치는 대로 막 노동(勞動)을 하여 생계(生計)를 꾸려 나갔다.
주변(周邊)의 아낙네들이 거의 한결같이 "천치바보에게 아까운 청춘(靑春)을 바칠 게 아니라, 멀리 도망(逃亡)을 가서 새 인생(人生)을 꾸며 모라,"고 진심(眞心)으로 동정(同情)어린 말로 권유(勸誘)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그이를 돌보지 않으면 영원(永遠)히 구제(救濟)할 수 없는 폐인(廢人)이 되고 만다. 나는 이미 이 집 귀신(鬼神)이 되기로 결심(決心)한 몸이다." 이와 같이 말하면서 동리(洞里) 아낙네들의 권유(勸誘)를 일언직하(一言直下)에 물리치곤 하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일을 해서 시(媤)누이를 출가(出嫁)시키기도 했는데, 그 여(女)가 키우다시피 한 사랑했던 시(媤)동생은 불행(不幸)히도 전사(戰死)하고 말았다.
세월(歲月)은 흘러 그의 힘으로 천수답(天水畓)도 800여평(余坪) 마련하는 기쁨을 맞게 되었는데, 그 기쁨도 잠시(暫時)일뿐, 이번에는 남편(男便)이 폐결핵(肺結核)으로 신음(呻吟)하게 되었다.
그러자 동리(洞里)사람들의 비웃음은 "차라리 저럴 바에야 죽어 버리는 것이 서로의 행복(幸福)을 위해서......"란 말로 그 여(女)의 심정(心情)을 괴롭혔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이여사(李女史)는 남편(男便)을 살려야겠다는 일념(一念)으로 병간호(病看護)에 더욱 정성(精誠)을 다했다.
남편(男便)을 부내부천(夫乃婦天), 곧 남편(男便)을 아내의 하늘로 알고 있는 이여사(李女史)의 인생관(人 生觀)은 확고(確固)하기만 했다.
"아내가 비록 남편(男便)과 함께 동등(同等)하다고는 하지만, 남편(男便)은 곧 아내의 하늘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 된 여자(女子)는 모름지기 남편(男便)을 예(禮)로써 공경(恭敬)하여 섬기되 그 아버지처럼 하여야 한다. 예(例)를 들면 몸을 스스로 천(賤)한 사람처럼 낮추고 뜻을 숙이며, 거짓으로 겉으로만 존대(尊待)하는 체하지 말고 오로지 순종(順從)함으로써 추호(秋毫)도 남편(男便)의 뜻을 거슬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이여사(李女史)가 지닌 남편관(南便觀)이었고 그의 확고(確固)한 인생철학(人生哲學)이었는데, 그가 지금껏 남편(男便)의 병(病)을 보살펴 온 기간(期間)만도 15년(年)이 넘었다고 하니, 그의 지극(至極)한 정성(精誠)을 한눈으로야 어찌 알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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