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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女子)의 몸도 아닌 남자(男子)의 몸으로 온갖 가사(家事)일을 도맡아 처리(處理)하면서, 아버지의 병(病)구완을 위해 전심전력(全心全力)을 경주(傾注)하고 있는 효자(孝子)가 있으니 그 주인공(主人公)이 바로 김진호씨(金鎭鎬氏)이다.
7세(歲)때 어머니와 사별(死別)하고 누님의 도움으로 가사(家事)를 이끌어 오던 중, 하나뿐인 누님마저 그가 13세(歲) 나던 해에 출가(出嫁)하는 바람에, 가정(家庭)에는 부자(父子) 단 둘만이 남는 딱한 처지(處地)가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그 이듬해에는 그의 아버지가 중풍(中風)으로 쓰러지는 그야말로 어려운 벼랑에 서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김씨(金氏)의 눈물겨운 효행(孝行)이 세상(世上)에 알려지기 시작(始作)하였다.
기동(起動)이 불우(不遇)한 부친(父親)의 대소변(大小便) 받아내기는 물론(勿論)이거니와 여자(女子)도 하기 힘든 빨래와 밥짓기 등 어디 그뿐이랴, 목욕(沐浴)을 시킨 후(後) 옷을 갈아입히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의 따뜻한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뿐이면 또 괜찮았겠는데,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남의 집 품팔이와 막 노동(勞動)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程度)로 생활(生活)이 어렵기만 한 그는,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약(藥)값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됐던 것이다.
비록 그는 국민학교(國民學校) 이상(以上)의 교육(敎育)은 받지 못했지만, 옛부터 내려오는 유교(儒敎)의 이치(理致)만은 많이 듣고 배웠기에, 웃어른을 섬기는 마음은 남다르기만 하였다.
그 좋은 실례(實例)가 바로 "혼자서 고생(苦生)할 것이 아니라 결혼(結婚)을 해서 아버님을 같이 모시도록 하라."는 주변(周邊) 사람들의 권유(勸諭)에, 그는 언제나 "마누라만 해도 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친자식(親子息)보다 더 잘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면서, 결혼(結婚)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돌리는 욕심(慾心)장이 효자(孝子)였다.
군(軍)에서 익힌 운전기술(運轉技術)로 면허(免許)까지 취득했지만, 취업(就業)을 위해 자신(自身)이 인근도시(隣近都市)로 나가게 되면, 병석(病席)의 아버지를 누가 돌볼 것인가 하는 염려(念慮)에서 취직(就職)까지 뒤로 미룰 만큼 홀아버지의 봉양(奉養)과 병간호(病看護)에만 전념(專念)하는 둘도 없는 효자(孝子)가 바로 김씨(金氏)라고 할 수 있겠다.
간혹(間或) 마을에서 축제(祝祭)가 있는 날이면, 아버지를 등에 업고 동내(洞內)를 이리저리 누비면서 구경(求景)을 시켜 드린 일도 비일비재(非一非再)했을 뿐만 아니라, 특(特)히 삼복(三伏)더위 여름철에는 나무그늘이 우거진 시원한 곳으로, 그리고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철에는 온 방안을 고루 따뜻하게 해 드리는 등 다시 말해서 춘하추동(春夏秋冬)을 단 한 시(時)도 불편(不便)한 날이 없도록 그의 세심(細心)한 효행(孝行)이 뒤따랐다.
밤이나 낮이나 아버지의 손발이 되고 환자(患者)에게 참다운 마음의 지팡이가 되고 있는 그를 가리켜, 마을 사람들은 효자(孝子)중의 효자(孝子)라고 칭송(稱頌)이 대단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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