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허정희(許貞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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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1980년 4월 18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군위군 군위읍
선행(善行) 허정희(許貞熙) 24세

"하루의 고달픈 생활(生活)도 남을 위해 살고 있는 기쁨으로 보상(報償)된다."고 말하면서, 해바라기처럼 밝게 웃는 허정희양(許貞熙孃), 바로 그 여(女)가 다니던 직장(職場)도 팽개치고, 날품팔이와 막노동(勞動)으로 불구청년(不具靑年)을 눈물겹게 간호(看護)하고 있는 미담(美談)의 주인공(主人公)이다. 

어느 작은 오두막집에서 신경성관절염(神經性關節炎)으로 전신(全身)이 마비(痲痺)된 채, 심지어 대소변(大小便)까지 받아내야 하는 불구(不具)의 장(張)영호氏(씨)와 34세(歲)와 홀어머니가 살고 있는데, 이들을 돕기 위해 허양(許孃)이 날품팔이와 행상(行商)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허양(許孃)이 불구청년(不具靑年)을 돕기도 결심(決心)하고 이 곳에 온 것은 지난 1978년(年) 10월(月), 당시(當時) 허양(許孃)은 서울 모(某) 섬유회사에서 2년(年)동안 재직(在職)하고 있었다. 

그가 장씨(張氏)를 알게 된 것은 불구청년(不具靑年)이 쓴 눈물겨운 수기(手記)를 읽고 수기(手記) 속의 주인공(主人公)을 찾아보기로 한 데서부터 싹텄다. 

불구청년(不具靑年)인 장씨(張氏)는 유복자(遺腹子)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군복무(軍服務)를 마치고 가사(家事)를 보던 중 26년(年) 되던 가을, 우연(偶然)히 무릎 관절(關節)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보행장애(步行障碍)를 일으켰다. 

진찰결과(診察結果) 신경성관절염(神經性關節炎)이란 진단(診斷)을 받았으나, 가난 때문에 제대로 치료(治療)를 받지 못하고 자가치료(自家治療)를 하다가 병세(病勢)가 더욱 악화(惡化)되어, 겨우 입과 손만을 움직이고 있을 뿐 완전폐인(完全廢人)이 되고 말았다. 

한편 충북(忠北) 단양(丹陽)이 고향(故鄕)인 허양(許孃)은, 불구청년(不具靑年)을 위해 일생(一生)을 헌신(獻身)하겠다는 뜻을 부모(父母)에게 알렸지만, 외동딸인 너를 불행(不幸)의 함정(陷穽)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다는 부모(父母)의 완강(頑强)한 반대(反對)도 외면(外面)한채, 허양(許孃)은 가족(家族)도 등지고 직장(職場)도 팽개치고 불구청년(不具靑年)이 살고 있는 장씨(張氏)의 집을 찾아갔다. 이때부터 허양(許孃)은 정성(精誠)을 다해 장씨(張氏)를 돌보는 한편, 한 가정(家庭)의 생계(生計)를 마 련하기 위해 막 노동(勞動) 품팔이를 시작하였다. 

매일(每日)같이 일터를 찾아다니며 모심기와 나무하기, 벼베기, 사과따기 등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떠맡고 나섰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남과 같이 능솔(能率)은 올리지 못했지만 있는 열성(熱誠)을 다해 맡은 바 자기(自己)의 책임량(責任量)을 다해 갔다. 

몇몇 아낙네들은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는 허양(許孃)을 보고 "뭣 때문에 사서 고생(苦生)하느냐? 병신(病身)인 남자(男子)와 일생(一生)을 같이해서 얻는 소득(所得)이 무엇이겠느냐? 그렇게 고생(苦生)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악몽(惡夢)에서 깨어나 광명(光明)을 찾으랴."고 충고(忠告)를 했지만, 그의 굳은 결심(決心)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마침내 동리(洞里) 사람들도 허양(許孃)의 거룩한 희생정신(犧牲精神)과 뜨거운 열성(熱誠)에 감동(感動)이 되어 찬사(讚辭)와 박수(拍手)를 아끼지 않았다. 

"저 처녀(處女)는 이 세상(世上)에서 둘도 없는 아름다운 인간천사(人間天使)이다." 이 말은 동민(洞民)들이 허양(許孃)을 아끼면서 하는 찬미(讚美)의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