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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자양(曺金子孃)은 가난한 농부(農夫)의 딸로 태어나, 부모(父母)님과 시모(媤母)님 밑에서 나름대로 행복(幸福)하게 자라오다가 그가 3세(歲)때, 어머니를 여의고 홀 아버지와 시모(媤母)님의 보살핌으로 자라났다. 그런데 조양(曺孃)이 9세(歲) 되던 국민학교(國民學校) 3학년(學年)때, 조 모(祖母)님이 고혈압(高血壓)으로 눕게 되면서부터 그에게도 모진 시련(試 鍊)이 닥쳐 왔다.
어린 나이임에도 조모(祖母)님의 병간호(病看護)와 가사(家事)를 돌보기 위해, 부득이(不得已)학교(學校)도 중단(中斷)해야만 했고, 그 날부터 일인이역(一人二役)의 어려운 일을 그 혼자서 해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의 조모(祖母)님은 기동(起動)마저 할 수 없어 대소변(大小便)도 그가 받아내야만 했는데, 어린 소녀(少女)이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으면서 고사리 손으로 정성(精誠)들여 보살펴 드렸다.
오죽 천진난만(天眞爛漫)했으면 냄새 나는 대소변(大小便)을 받아내면서도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하면서 흥겨운 노래까지 불렀을까.
그의 조모(祖母)님은, 인형(人形)처럼 귀엽기만 한 손녀(孫女)가 너무나 고맙고 애처로워서 "네 고생(苦生)은 덜어 주기 위해서라도 내가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텐데..."하면서 때때로 눈물을 지었다.
그러나 손녀(孫女)의 따뜻한 간호(看護)의 보람도 없이 그의 조모(祖母)님은 병석(病席)에 누우신지 6년(年) 반(半)만에 별세(別世)하였는데, 그 동안 매일(每日)같이 대소변(大小便) 처리(處理)는 물론, 빨래와 시탕(侍湯) 그리고 하루 5~6회(回)에 걸친 미음 끓여들이기 등 어린 소녀(少女)에게는 너무나 벅찬 나날이었다.
이제 조양(曺孃)은 그가 의지(依支)하고 존경(尊敬)했던 조모(祖母)님을 잃고 홀 아버지만을 모시게 됐는데, 어린 나이에 저렇게 기특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외로운 아버지를 위해 정성(精誠)을 다 쏟고 있는 그는, 누가 보나 어엿한 어른이지. 16세(歲)의 어린 소녀(少女)는 아니었다.
언젠가 그의 아버지가 독감(毒感)으로 입맛을 잃고 꼬박 끼니를 굶자, 그도 아버지를 따라서 조석(朝夕)을 굶은 일이 있었는데, 이 때 아버지가 "넌 왜 먹지 않느냐? 어서 먹어라."고 말했지만,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굶고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밥이 넘어가겠습니까?"하고 같이 굶을 정도(程度)로, 그의 효심(孝心)은 어린 소녀(少女)답지 않게 두텁기만 했다.
오죽했으면 조양(曺孃)의 갸륵한 행실(行實)에 감동(感動)한 마을 사람들이 "조양(曺孃)이야말로 청소년(靑少年) 본보기이다."라고 말하면서, 푸짐한 상(賞)을 마련해 놓고 동민(洞民)들 앞에서 우렁찬 박수갈채(拍手喝采)를 보냈을까?
이러한 조양(曺孃)의 기특하고 갸륵한 효행(孝行)이 알려져, 1980년(年) 2월(月)에는 김천(金泉)로타리클럽에서도 그에게 효행상(孝行賞)을 안겨 주었다.
자고(自古)로 쓰러진 사람이 넘어진 사람을 구(求)할 수 없다고 하였지만, 조양(曺孃)만은 능(能)히 이와 같은 역경(逆境)도 타개(打開)해 나갈 수 있는 장(壯)한 여성(女性)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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