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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수씨와 김점부 여사의 4남매 중 막내 외동아들로 태어난 변태현씨는 부모님의 사랑을 남달리 받으며 자랐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졸지에 사망하게 되어 가사에 크게 변동이 생기고, 평소에 혈압이 정상이 아니던 어머니께서, 가장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으로 쓰러져 중풍으로 눕게 되었다.
가세는 더욱 기울어지고 어머니의 병세는 날로 짙어만 갔다. 갑자기 들이닥친 불운에 어린 4남매는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합심하여 열심히 살며 어머님의 병구완에 전념할 것을 다짐하였다.
변씨는 국민학교는 근근 졸업하였으나 중학교 진학은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4남매는 아무리 열심히 닥치는 대로 일해도 식생활과 어머님의 병구완을 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웠다. 누나들은 이웃의 궂은일이나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일했고, 변씨는 주린 배를 안고 한 장의 신문이라도 더 팔아 보겠다는 욕심에 발이 부르터지는 줄도 모른 채 거리를 누볐다.
그러나 생활형편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맴돌았고, 있는 정성을 다하여 애써 간호하고 백방으로 구하여 드린 좋다는 약도 효험 없이 어머님의 병세는 악화일로에 있었다.
남매는 보람 없는 그들의 노력이 너무도 안타까워 부둥켜안고 울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님이 완쾌 되실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은 말은 않으나 모두가 다 같이 굳어만 갔다.
아무 진전 없는 나날이었으나, 누나는 그 중에서도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된 동생을 안타까이 여기고 중학교에 보냈다.
신문도 팔고 구두도 닦고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고, 어머님에 대한 시중은 어느 효자도 따르지 못할 만큼 있는 정성을 다하였다.
갖은 고생 끝에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야간부로 진학했다. 밤이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오면 어머님의 병환을 보살피며 몸이 부서지도록 열심히 노력하였다. 역경 속에서도 좌절한다거나 실의에 빠지지 않고 꿋꿋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어머님을 기어코 완쾌시켜야 한다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어머님의 병세는 차도가 없으니 이것은 나의 정성이 부족한 때문이라 자책하면서, 더욱더 어머님에게 성력을 쏟았다.
이와 같은 갸륵한 마음에 하늘도 감응하였던지, 이들의 딱한 사정을 안 학교에서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취직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적은 보수이었으나마 마음이 안정되고 책도 볼 수 있게 되어 어린 그는 날듯이 기뻐했다.
그런데, 방 한 칸에 여섯 식구가 살아야 했고, 더욱이 중풍환자가 있으니 세 얻기가 어려웠고, 세 들었다 해도 짧은 기간에 쫓겨나야 했다. 어머님을 등에 업고 셋방을 찾아 헤맬 때는 어린 가슴에 사무치는 서러움에 눈물을 금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굳은 의지와 이 난을 이겨야 어머님을 완쾌 시킬 수 있다는 결의에는 변함이 없었다.
한편 면학의 집념은 불타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방송통신대학에 적을 두게 되었고, 세월은 흘러 대학과정을 마쳤다. 감당하기 어려운 역경에도 꿋꿋하게 성실히 살아가는 모습을 본 직장에서, 그를 정직원으로 채용해 주어 점차 생활도 안정되어 갔다.
그 동안 너무 고생한 누님의 나이가 벌써 서른이 넘었으니, 간곡하게 결혼을 종용하였으나, 어머님의 병환이 완쾌되기 전에는 결혼 할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러나 변씨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긴 누님은 결혼은 하였으나, 어머님을 걱정하여 자주 드나들고 있다. 어머님의 병구완을 위하여 친정 가까이 방을 얻어 놓고 수시로 들러 시중을 들었으나, 이제는 언어 장애까지 겹쳐서 더욱 상심하게 되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음은, 나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하고 더욱 더 있는 효성을 다하였다.
28세가 되던 해, 그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한 규수가 자청하여 그의 어려움을 돕겠다고 찾아왔다.
당신의 아름다운 마음씨에는 감사해 마지않으나, 나의 환경으로써는 그 청을 받아들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여인의 굳은 의지에 끝내 감복하여 결혼하였다. 그녀의 시모에 대한 효심 또한 남편에 못지 않게 지극했기 때문에, 언어장애는 있으나 어머님의 마음은 흡족하기 이를 데 없는 듯 희색이 만면에 돌았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된 변 효자는 어려움을 하루빨리 탈피하려고 아내에게 맞벌이를 하고, 어머님의 간병은 자신이 맡겠다고 제안하니, 아내 역시 남편의 뜻을 좇아 승낙하고 양품점을 자그마하게 시작했다. 귀가 때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모님이 좋아하는 음식물을 사들고 와서 드리는 효심은 남편에 조금도 못지않았다.
1년을 하루같이 어머님의 병구완에 갈력(竭力)하는 이들 한 쌍의 원앙부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여윈 어머님의 얼굴에는 알지 못할 미소와 지금은 의젓하지만, 그 오랫동안 너무도 험한 형극(荊棘)의 길을 걸어온 아들이 가여워서인지 푹 꺼진 눈에는 눈물이 가득 괴었다.
말을 못하는 어머니를 안타까이 지켜 보는 아들은, 어떻게 하면 완치시켜 드릴까 하는 일념에 말없이 두 뺨을 적신다. 패륜이 팽배한 요즈음, 어릴 때부터 주소일념(晝宵一念)으로 모친의 병을 완치시키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으로 일관한 변 씨야말로 효의 산 교본이며, 모든 젊은이의 사표라 할 수 있겠다.
그의 이런 행적은 직장에서도 높이 평가되었고, 주위에서 칭송의 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출천지효자(出天之孝子)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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