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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男) 1녀(女)의 어머니인 손수야(孫壽倻) 여사(女史)는 운전기사(運轉技士)인 남편(男便)을 정성(精誠)껏 섬기면서 나름대로 새마을 운동(運動)에도 크게 기여(寄與)하고 있는 모범여성(模範女性)이다.
손여사(孫女史)는 4년 전(年前)부터 새마을 지도자(指導者)로서 지역사회(地域社會) 개발(開發)에 헌신(獻身)하고 있었는데,특(特)히 그는 저축(貯蓄)심(心) 앙양(昻揚)을 위해 매월(每月) 2회(回)에 걸쳐 관내(管內) 통반(統班)을 순회(巡廻)하면서 발품(發品)을 수집(蒐集), 여기서 얻은 수입금(收入金) 30만(萬)원으로 마을금고 통장(通帳) 50구좌(口座)를 만들어 각세대별(各世帶別)로 나눠 주기도 하였다.
이것이 밑거름이 되어 다른 어느 마을보다도 저축(貯蓄)의 생활화(生活化)를 기(期)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집집마다 폐품(廢品)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절약(節約)하는 미풍(美風)도 아울러 기르게 되었다.
또한 주말(週末)과 휴일(休日)에는 유원지(遊園地)의 정화(淨化)와 관광질서(觀光秩序) 확립(確立)에도 크게 힘쓰는 등, 그의 활동(活動)은 눈부시기만 했는데, 특(特)히 손여사(孫女史)는 교통량(交通量)에 비(比)해 인력(人力)이 부족(不足)한 경찰관(警察官)들의 노고(勞苦)와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입석동(立石동)에서 발생(發生)하는 크고 작은 교통사고(交通事故)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 손수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거리에 나가기도 하였다.
매일(每日) 새벽같이 길거리에 나가서 그가 직접(直接) 교통정리(交通整理)를 하기도 했고, 또한 노약자(老弱者)들이나 어린 학생(學生)들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橫斷步道)를 안전(安全)하게 건네 주기도 하였다.
거리 질서(秩序)를 바로잡기 위해서 거리에 나선 지도 수년(數年), 간혹 지나가는 행인(行人)들이 "할 일이 없으면 낮잠이나 자지."하면서 그의 행동(行動)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저런 마누라 하고 같이 살면 집안 꼴이 무엇이 되겠나?"하는 등 빈정대기도 했지만, 아침 저녁으로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감사(感謝)하는 마음에서 미소(微笑)띤 얼굴도 그의 노고(勞苦)를 박수(拍手)로 칭송(稱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交通事故)를 당해 약 10일(日) 정도 병원신세(病院身勢)를 진 일도 있었지만, 건강(健康)이 회복(回復)되기가 바쁘게 또다시 거리로 뛰어나가는 열성(熱誠)을 보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경노당(敬老堂)을 새로이 정비(整備)하여 노인(老人)들을 기쁘게 해 드렸으며, 가끔 간식(間食)과 다과(茶課)를 마련해서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 주기도 하였다.
별명(別名)이 교통순찰(交通巡察)인 손여사(孫女史)는 이와 같은 공로(功勞)로 지금까지 대구동부경찰서장(大邱東部警察署長)의 감사장(感謝狀), 대구동촌출장소장(大邱東村出張所長)의 표창장(表彰狀), 대구동촌국민학교장(大邱東村國民學校長)의 감사장(感謝狀) 등 수많은 감사장(感謝狀)과 표창장(表彰狀)을 받기도 하였다.
간혹(間或) 자녀(子女)들로부터 "남 부끄러운 일이니 이제 교통정리(交通整理)는 그만 하세요."라는 성화(成火)가 빗발쳤지만 그의 결심(決心)은 단호(斷乎)하기만 하였다.
오늘도 한 가정(家庭)의 역할(役割)은 뒤로 제쳐놓고, 거리에 나서서 열심(熱心)히 호각을 불며 교통정리(交通整理)를 하고 있는 손여사(孫女史), 그 여(女)야말로 거리를 밝혀 주는 참다운 인간신호대(人間信號臺)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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