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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歲)에 달(達)하는 고령(高齡)의 며느리가 90세(歲)에 이른 노시모(老媤母)님을 극진(極盡)히 봉양(奉養)하고 있는 미담(美談)의 주인공(主人公)이 바로 이 이경순(李景順) 여사(女史)이다.
이여사(李女史)는 슬하(膝下)에 3남매(男妹)를 두고 남부럽지 않게 다복(多福)하게 살아오던 중, 남편(男便)의 도정공장(搗精工場) 운영(運營)의 실패(失敗)로 가정(家庭)이 파산(破産)되면서부터 극도(極度)의 가난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사업(事業)에 실패(失敗)한 남편(男便)은 실의(失意)와 절망(絶望)속에서 술로 세월(歲月)을 보내는 날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이여사(李女史)는 남편(男便)의 손을 꼭 붙잡고,
"당신(當身)은 비록 사업(事業)에는 실패(失敗)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人生)에 실패(失敗)한 것은 아니지 않소. 실패(失敗)는 성공(成功)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듯이 용기(勇氣)를 잃지 말고 굳건하게 다시 일어서 봐요."
라고 하면서, 남편(男便)에게 새로운 용기(勇氣)와 희망(希望)을 북돋워 주기에 안간힘을 썼다.
이와 같이 실의(失意)에 빠진 남편(男便)을 달래면서 또 한편으로 귀도 멀고 눈도 멀고 그리고 기동(起動)마저 불자유(不自油)스러운 구순(九旬)의 시모(媤母)님을 지성(至誠)껏 봉양(奉養)하고 있는 이여사(李女史)는, 할머니가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고 말할 정도(程度)로 그 자신(自身)도 노쇠(老衰)한 몸이긴 했지만 단 한 번도 그런 내색(內色)은 않고, 지금껏 15년간(年間)을 하루같이 간병(看病)을 해 오면서 성(誠)을 다해 봉양(奉養)해 왔다.
노시모(老媤母)님은 귀도 멀고 눈도 먼 탓으로 간호(看護)를 할 때마다 살얼음을 딛는 것 이상(以上)으로 조심성(操心性)이 뒤따랐기 때문에, 다른 환자(患者)들에 비(比)하여 피로(疲勞)가 몇 갑절이나 더 가중(加重)될 수 밖에 없었다.
간혹 이여사(李女史)가 집을 잠시(暫時) 비워 놓은 외출(外出)에서 돌아와 보면, 이불과 요와 방바닥에 대소변(大小便)을 여기저기 발라 놓고 노망기(老妄氣)를 부릴 때도 비일비재(非一非再)했지만, 이여사(李女史)는 오히려 그를 더욱 가련(可憐)하게 생각하면서 깨끗하게 다시 정리(整理)해 놓곤 하였다.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탓으로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벙어리 냉(冷)가슴 앓듯 답답했지만 그는 용하게도 인내(忍耐)와 노력(努力)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노환(老患)이라 이젠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라지만, 그래도 건강(健康)에 좋다는 약(藥)을 수시(隨時)로 사다가 복용(服用)시켜 드리고 있으며, 맛있는 음식(飮食)도 자주 정성(精誠)들여 만들어 드리고 있다. "꼬 부랑 며느리가 꼬부랑 시(媤)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있다."라는 소문(所聞)이 온 고을에 자자하게 퍼질 정도(程度)로 이여사(李女史)의 효성(孝誠)은 뜨겁기만 하였다.
부모(父母)의 은혜(恩惠)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면, 부모(父母)에게 바치는 효(孝)도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지닌 효(孝)의 철학(哲學)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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