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우창호(禹昌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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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1982년 4월 13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경주시 구천동
선행(善行) 우창호(禹昌鎬) 44세

새마을 지도자(指導者)이면서 구황동(九黃洞)의 통장(統長)이기도 한 우창호씨(禹昌鎬氏)는, 마을을 위해 헌신(獻身)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인간상록수(人間常綠樹)이다. 

무엇보다 우씨(禹氏)는 충효사상(忠孝思想) 앙양운동(昻揚運動)에 유달리 앞장서고 있다. 

1979년(年) 전국적(全國的)으로 충효사상(忠孝思想) 앙양운동(昻揚運動)의 메아리가 울려 퍼질 때, 우씨(禹氏)는 무엇보다 먼저 동리(洞里) 경노당(敬老堂) 건립(建立)부터 해야겠다고 작심(作心)하고 자기(自己)마을에 충효사상(忠孝思想)의 뿌리를 내리게 하기로 결심(決心)하였다. 

그러나 경로당(敬老堂)을 새롭게 짓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했고, 우씨(禹氏) 단독(單獨)의 힘으로는 그만한 자금(資金)을 마련하기란 힘겨운 일이었다. 

그래서 우씨(禹氏)는 우선 폐차(廢車)된 버스를 싸게 구입(購入)하여 개조(改造)하고 수리(修理)하여 경로당(敬老堂)으로 삼아 황오동(皇吾洞) 1,2통(統)과 모황동(毛黃洞) 1.2.3(統) 노인(老人)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소일(消日)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79년 3월(月)에는 자신(自身)이 주재(主宰)하여 경로(敬老)잔치를 베풀기도 하였으며, 그 후(後)에도 수시(隨時)로 이곳 저곳의 경로당(敬老堂)을 찾아가서 음식(飮食)을 대접(待接)하는 등, 웃어른을 공경(恭敬)하는 그의 아름다운 행실(行實)은 참으로 갸륵하기만 하였다. 

그의 이러한 경로심(敬老心)은, 언제, 어디서나 변(變)함 없었다. 길을 걸을 때 동네 노인(老人)이나 인근(隣近) 동네 노인(老人)을 막론(莫論)하고 노인(老人)분들을 만나면, 언제나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마을에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옛 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했지요, 즉 임금과 스승과 어버이는 하나같이 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라에 충성(忠誠)하는 것을 부모(父母)에 효도(孝道)하는 것이며, 부모(父母)에 효도(孝道)하는 것이 곧 나라에 대한 충성(忠誠)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父母)에 효도(孝道)하는 마음이 더욱 커질 때 곧 경로사상(敬老思想)으로 발전(發展)할 것이므로, 경로심(敬老心) 또한 효성(孝誠)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고 하면서, 동네 주민(住民)들에게 경로심(敬老心)을 고취(鼓吹)하기 위하여 선도(先導)하여 노력(努力)하였다. 

이러한 우씨(禹氏)의 숨은 노고(勞苦)와 노인(老人) 공경심(恭敬心)은, 동네 주민(住民)들로 하여금 아낌없는 찬사(讚辭)를 받음과 동시에, 동네 주민(住民)또한 모두가 노인(老人)을 공경(恭敬)하는 아름다운 풍조(風潮)를 이루어 가고 있다. 

그러나 우씨(禹氏)는 자신(自身)의 행동(行動)을 조금도 자랑 삼으려 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룬 경제성장(經濟成長)의 바탕 위에 충효(忠孝)를 바탕으로 한 새 마음으로, 경제발전(經濟發展)을 완성(完成)시켜 물질적(物質的)으로나 정신적(精神的)으로나 풍요(豊饒)하고 성열(盛熱)한 새 나라를 건설(建設)해야 합니다."라고 강조(强調)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