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정구현(鄭龜鉉)

페이지 정보

본문

제26회(1983년 4월 18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구미시 비산동
선행(善行) 정구현(鄭龜鉉) 51세

평소(平素) 노모(老母)를 극진히 모시면서 노인복지(老人福祉) 향상(向上)과 복지사회(福祉社會) 구현(具顯)을 위해 힘써 온 정구현씨(鄭龜鉉氏)는, 특히 노인회(老人會) 조직(組織)을 위해 그의 뜨거운 정열(情熱)을 모두 쏟았다.

1982년(年) 5월(月)에 사비(私費)를 21만(萬)원을 들여 경로(敬老)잔치를 베풀어 59명(名)의 동리노인(洞里老人)들을 기쁘게 했는데, 특히 이 자리에서 노인회(老人會)를 조직(組織)할 것을 노인(老人)들에게 권(勸)하고 그를 위해 자신(自身)이 앞장설 것을 다짐하였다. 

다음 날부터 노인회(老人會) 조직(組織)을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한 끝에 드디어 그 해 8월(月), 비산동노인회(飛山洞老人會) 현판식(懸板式)을 가졌는데, 이 날 노인(老人)들의 사기진작(士氣振作)을 위해 자신(自身)이 먼저 현금(現金) 20,000원을 희사(喜捨)하기도 했다. 

노인회(老人會)가 발족(發足)된 이후, 매월(每月) 실시하는 정기조기청소(定期早期淸掃)와 매주(每週) 토요일(土曜日)로 정(定)해 놓은 자연보호운동(自然保護運動)에 노인(老人)들이 적극참여(積極參與)토록 한 결과, 오늘날에 와서는 구미시(龜尾市)에서 으뜸을 자랑할 만큼 좋은 실적(實績)을 거두고 있다. 

이 밖에도 발품수집(發品蒐集)을 벌여 개당(個當) 2,000원 상당(相當)의 쓰레기통 36개(個)를 제작하여 마을 적지(適地)에 비치(備置)해 놓기도 하는 등, 생활환경조성(生活環境造成)에도 많은 힘을 경주(傾注)하였다.

뿐만 아니라 1982년(年) 10월(月)에는 통장(統長) 및 새마을 지도자(指導者)와 긴밀히 협력(協力)하여 주민(住民)과 귀성객(歸省客) 150여명(餘名)을 모아놓고 즐거운 추석(秋夕)잔치를 베풀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1982년(年) 12월(月)에는 노인회(老人會) 기금조성(基金造成)을 위한 주민총회(住民總會)를 개최한 바 있는데, 이 석상(席上)에서도 정씨(鄭氏)는 연탄(煉炭) 100장과 현금(現金) 20만(萬)원을 기꺼이 희사(喜捨)했다. 

이날 모인 기금조성(基金造成) 금액(金額)은 모두 25만(萬)원에 달(達)했는데, 이와 같은 모금(募金) 성과(成果)야말로 정씨(鄭氏)의 숨은 공로(功勞)라고 노인(勞人)들은 입을 모으고 있었다.

특히 정씨(鄭氏)는 청소년(靑少年)들이야말로 보호(保護)하지 않으면 꺾인다고 말하면서, 해마다 년말(年末) 년시(年始)에는 솔선수범(率先垂範)해서 거리에 나아가 청소년(靑少年) 선도(善導)를 위해 힘써 왔다. 

남달리 경애사상(敬愛思想)이 두터운 정씨(鄭氏)는 1983년(年) 1월(月) 청소년(靑少年) 25명(名)과 함께 대화(對話)의 광장(廣場)을 마련해서 노인공경(老人恭敬)에 대한 좌담회(座談會)를 갖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이 자리에서 경로사상(敬老思想)을 각별히 강조한 후 아울러, "소비(消費)하고 남는 것을 저축(貯蓄)하려 할 것이 아니라, 저축(貯蓄)하고 남는 것을 소비(消費)하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라인강(江)의 기적(奇蹟)을 이룩한 서독(西獨)을 보라, 그들은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땀을 흘렸고, 우리가 흥청망청 소비(消費)할 때 그들은 꾸준히 저축(貯蓄)하였으며, 또한 우리가 내일(來日)을 망각(忘却)하고 오늘만을 즐기고 있을 때 그들은 오늘의 굶주림을 참아가며 내일(來日)을 위해 저축(貯蓄)을 했다."고 말하면서 저축(貯蓄)의 중요성(重要性)을 강조(强調)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씨(鄭氏)의 생활신조(生活信條)는, 나보다 남을 위해 봉사(奉仕)한다는 것이 그의 인생철학(人生哲學)이었는데, 사실(事實)그는 지금껏 자신(自身)보다 남을 위해 살아온 인도주의자(人道主義者)였다.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노인(老人)만 만나면 자신(自身)도 모르게 고개가 저절로 숙여 진다는 정귀현씨(鄭龜鉉氏), 제2(第2), 제3(第3)의 정귀현씨(鄭龜鉉氏)가 우리 사회(社會)에 불어날 때, 비로소 명랑(明朗)이란 꽃도 아름답게 피어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