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장승자(張勝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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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1983년 4월 18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김천시 부곡동
선행(善行) 장승자(張勝子) 69세

경애사상(敬愛思想)은 전통적(傳統的)으로 우리가 물려받은 우리 고유(固有)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다. 

따라서 청소년(靑少年)들에게 조상(祖上)과 부모(父母)에 대한 은혜(恩惠)를 되새기게 하고, 어른과 노인(老人)에 대한 존경(尊敬)과 보호(保護)의 마음을 진작(振作)시키며, 자라날 때 자기(自己)가 받은 사랑으로 후세(後世)를 키워, 이 나라의 장래(將來)를 위한 역군(役軍)을 길러내게 하며, 더욱 나아가서는 이들에게 사랑과 믿음이 가정(家庭)을 이룩할 책임(責任)을 자각(自覺)하게 해 줄 때, 비로소 가정(家庭)도 화목(和睦)해지고 사회(社會)도 명랑(明朗)해질 수 있는 것이다.

장승자(張勝子) 여사(女史), 바로 그 녀(女)야말로 그와 같은 박애사상(博愛思想)을 몸소 실천(實踐)하여 꽃피운 모범여성(模範女性)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올해 69세(歲)인 장여사(張女史)는 그가 19세(歲) 때 결혼(結婚)하였는데, 슬하(膝下)에 한 사람의 자녀(子女)도 두지 못하고 28세(歲) 되던 해 남편(男便)과 사별(死別)한 후, 양녀(養女)를 길러 출가(出嫁)시킨 다음 지금은 홀로 외로운 인생(人生)을 보내고 있다. 

남편(男便)의 사망(死亡)과 함께 가산(家産)까지 몽땅 탕진(蕩盡)한 그 녀(女)는 그 동안 행상(行商)과 품팔이로 한 푼 두 푼 저축(貯蓄)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남의 신세(身勢)를 지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되었다. 

"내 생전(生前)에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해야 할 텐데...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장녀사(張女史)의 고민(苦憫)은 어렵지 않게 해결(解決)이 됐다. 

1982년(年) 4월(月), 그가 살고 있는 부곡(富谷) 1동(洞)에 60세(歲) 이상(以上)된 노인(老人)만도 자그마치 800여명(餘名)에 이르지만, 이들이 평안(平安)하게 쉴 수 있는 경노당(敬老堂)이 없다는 것에 착안(着眼)을 한 그 녀(女)는, 자신(自身)의 능력(能力)으로 경로당(敬老堂)을 지어 주리라 마음먹고 대지(垈地) 133평(坪)을 500만(萬)원에 구입(購入)했다. 

이어 1,600여만(餘萬)원을 들여 2층(層) 총건평(總建坪) 38평(坪)의 아담한 현대식(現代式) 건물(建物)을 완공(完工)하여 노인(老人)들에게 제공(提供)하였다. 

"월세처럼 이리저리 방황(彷徨)하던 노인(老人)들이 이에 평안(平安)한 보금자리를 찾게 됐습니다. 세상(世上)에 이렇게 고마운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경로당(敬老堂)을 개관(開館)하던 날, 이 곳에 모여든 노인(老人)들은 하나같이 장여사(張女史)의 숭고(崇高)한 박애정신(博愛精神)에 사의(謝意)를 표(表)했고, 너무나 좋아서 춤까지 둥실둥실 추었다 한다. 

그 후(後) 노인회(老人會)에서는 장여사(張女史)의 고마운 뜻을 기리기 위해 노인(老人)들 서로가 용돈을 절약(節約)하여 모은 돈 350만(萬)원으로, 장여사(張女史)의 석상(石像)을 만들어 경로당(敬老堂)에 건립(建立)하기로 했다. 

평소에도 불우(不遇)한 이웃 노인(老人)들에게 따뜻한 인정(人情)을 아낌없이 나눠 주었던 장여사(張女史)는, 남은 여생(餘生)도 노인(老人)들을 위해 헌신(獻身)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상(祖上)에게 감사(感謝)하는 마음, 부모(父母)의 은혜(恩惠)를 생각하고 효도(孝道)하는 마음, 그리고 웃어른 공경(恭敬)하는 마음, 이와 같은 마음과 마음들이 마을마다 꽃피게 할 때, 비로소 참다운 평화(平 和)가 찾아오지 않을까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