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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男) 1녀(女)의 어머니인 박귀조(朴貴祚) 여사(女史)는, 오늘도 노름과 술로 밤을 지새우고 있는 남편(男便)의 끝없는 탈선(脫線)을 원망(怨望)하면서 꼬박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며칠 후에 들어온 남편(男便)을 붙잡고 박여사(朴女史)는 눈물로 호소(呼訴)했다.
"여보 이제 술도 그만 삼가고 노름도 손을 끊어요. 제발 좀 새 사람이 되어 주세요. 네, 여보?"
이와 같이 말할 때마다, 남편(男便)의 대답(對答)은 손찌검이었고 심지어 어린 자녀(子女)들에게까지 손으로 때리고 발길로 차면서 구타(毆打)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재도구(家財道具)도 성한 것이 없을 만큼 남편(男便)의 행패(行悖)는 날로 극심(極甚)해져만 갔다. 따라서 박여사(朴女史)는 한숨 쉴 겨를도 없이 1,000평(坪)의 농토(農土)도 혼자 힘으로 가꾸어 가면서 남편(男便)이 다시 새 사람되기만을 간절히 빌고 있었다. 끝내 남편(男便)은 그나마 농토(農土) 반(半)도 노름판에 갔다 바칠 정도(程度)로 가산(家産)을 탕진(蕩盡)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어린 자식(子息)을 등에 업고 품팔이와 산나물을 캐어서 내다 파는 등 눈물 겨운 고난(苦難)의 길을 걸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男便)은 술로 인(因)해 쓰려져 병석(病席)에 눕는 몸이 됐다.
폐인(廢人)이 되다시피 병약(病弱)해진 그의 남편(男便)은, 병석(病席)에 누워 신음(呻吟)하면서도 이런저런 일로 박여사(朴女史)를 괴롭혔지만, 그는 따뜻한 간호(看護)로 응대(應對)할 뿐이었으며 병(病)에 좋다는 약(藥)을 구(求)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남편(男便) 구환(救患)에만 전념(專念)했다.
심지어 무당까지 불러다가 푸닥거리를 하는 등 남편(男便)을 위한 그의 일편단심(一片丹心)은 눈물겹기만 하였다.
박여사(朴女史)의 정성(精誠)이 오죽 컸으면 비인간적(非人間的)이었던 그의 남편(男便)마저도 그의 손을 어루만져 가며, "여보 당신 보기 정말 면목(面目)이 없으랴. 병(病)이 완쾌(完快)되면 꼭 새사람이 되어서 당신 은혜(恩惠)를 갚으리다." 이와 같이 말하는 그의 두 눈에는 이슬까지 맺혀있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했듯이, 박여사(朴女史)의 정성(精誠)어린 간호(看護)로 마침내 폐병(廢病) 10년(年)만에 남편(男便)은 잃어버렸던 건강(健康)을 되찾았고, 그의 생활관(生活觀)과 인생관(人生觀)도 몰라보게 달라질 만큼 변모(變貌)되어 박여사(朴女史)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이제 이들 부부(夫婦)는 서로가 합심(合心)하여 야산(野山)도 개간(開墾)하고 거기에다 과수원(果樹園)의 꿈도 심는 등 희망(希望)차고 행복(幸福)된 나날을 보내게 됐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그의 남편(男便)이 노름판과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근면절약(勤勉節約)의 참뜻을 강조(强調)할 정도로 사람이 달라져 갔다.
비뚤어진 남편(男便)의 사고(思考)와 생활방식(生活方式)을 오직 따뜻한 애정(愛情)과 인내(忍耐)로 이겨온 박여사(朴女史), 인근주민(隣近住民)들은 그를 가리켜 열부중(烈婦中)의 열부(烈婦)라는 이름으로 칭송(稱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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