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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금하(可空今夏) 여사(女史)의 남편(男便)은 매일같이 노름으로 세월(歲月)을 보내면서, 툭하면 아내에게 손찌검하기가 일쑤였다.
또한 그의 시(媤)동생 역시 성격(性格)이 난폭(亂暴)해서, 싸움질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日課)처럼 동내(洞內)에서 말썽을 부렸다.
"여보, 당신부터 손버릇을 고쳐요. 당신이 툭하면 날 때리니까 당신 동생도 본 받는 것 아니우? 제발 이제 노름도 고만 하고 건전(健全)하게 살아 봐요, 네. 여보?"
아내의 눈물 어린 이와 같은 호소(呼訴)에 그의 남편(男便)은 언제나 주먹으로 응답했다. 매일(每日)같이 남편(男便)으로부터 까닭도 없이 매를 맞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바보처럼 매만 맞고 살 것이 아니라, 어디로 도망(逃亡)가서 재혼(再婚)해요. 당신 남편(男便)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야 짐승." 오죽 보기가 딱했으면 인근주민(隣近住民)들이 이런 말까지 했으랴. 남편(男便)이 그를 구타(毆打)하면 할수록 가공여사(可空女史)의 신념(信念)은 한결같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힘으로 새 사람을 만들어 놓고야 말겠어.' 그의 집념(執念)은 이와 같이 끈덕졌지만, 난폭자(亂暴者)들은 여전(如前)히 '형제(兄弟)는 용감(勇敢)하였다.'식(式) 그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每日)같이 술과 노름과 주먹질로 세월(歲月)을 보내던 남편(男便)이 알콜 중독(中毒)으로 병석(病席)에 눕게 됐다.
그 녀(女)는 병(病)든 남편(男便)이 한없이 밉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외면(外面)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정성(精誠)을 다해 구환(救患)했다.
얼마 후(後) 남편(男便)은 장염(腸炎)까지 겹쳐 내의(內衣)는 언제나 피똥으로 얼룩졌고 가공여사(可空女史)는 오히려 남편(男便)을 더욱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극진하게 간호(看護)도 하고, 하루에도 몇 차례에 걸쳐 내의(內衣)를 빨아 갈아입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병(病)에 좋다는 약초(藥草)는 모두 구(求)해다가 정성(精誠)들여 달여 먹였다.
비로소 남편(男便)도 지극한 그의 정성(精誠)에 감동(感動)이 됐던지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했듯이, 극진한 그의 간호(看護)가 마침내 보람으로 나타나 남편(男便)은 하루가 다르게 건강(健康)이 회복(回復)되어 갔다.
한편 그의 시(媤)동생은 폭력범(暴力犯)으로 쇠고랑을 차고 그 후(後) 순화교육(醇化敎育)을 거쳐 몇 년(年)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난폭자(亂暴者)의 성질(性質)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벙어리처럼 말이 없을 만큼 새 사람으로 변(變)했다.
이제 남편(男便)은 가공여사(可空女史)와 더불어 조그만한 식당(食堂)을 경영(經營)하면서 행복(幸福)한 나날을 보내고 있고, 그의 시(媤)동생도 건설사회(建設社會)에 취업(就業)하여 새 출발(出發)의 기틀을 더욱 알차게 다져가고 있다.
가공여사(可空女史)의 정성(精誠)으로 건강(健康)도 되찾고 인생(人生)도 되찾게 된 이들 형제(兄弟)는, 지금에 와서는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마누라와 형수(兄嫂)가 아니었더라면 그야말로 난폭자중(亂暴者中)에서도 영영 악명(惡名) 높은 난폭자(亂暴者)가 되었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가공여사(可空女史)의 고마운 은혜(恩惠)를 저마다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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