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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夫婦)란 서로가 사이 좋게 떨어지지 않고 죽을 때까지 한 방(房)에서 서로 돌보아 주며 지내기 때문에, 마침내 서로를 존귀(尊貴)하게 여길 줄 모르는 지경(地境)에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境遇)가 많다.
다시 말해서 부부간(夫婦間)에 지나치게 친밀(親密)한 마음이 생겨나게 되면, 주고받는 말이 지나치게 되고, 말이 지나치게 되면 방자한 행동(行動)이 싹트게 되며 서로를 귀(貴)히 여기지 않고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겨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사람에 따라서 다를 뿐, 여기 진심(眞心)으로 남편(男便)을 하늘처럼 생각하면서 지금껏 8년(年) 동안 남편(男便)의 병(病)구완을 해 온 자랑스러운 열부(烈夫)가 있으니 그가 곧 정우용(鄭友容) 여사(女史)이다.
정여사(鄭女史)는 18세(歲)때 결혼(結婚)하여 슬하(膝下)에 5남매(男妹)를 두고 있었는데, 8년전(年前) 공직생활(公職生活)에서 물러난 남편(男便)이 중풍(中風)으로 쓰러지면서부터 이 가정(家庭)에도 암운(暗雲)이 덮이기 시작하였다.
남편(男便)의 병세(病勢)는 날이 갈수록 악화(惡化)되어 마침내 식물인간(植物人間)과 다름없는 기동불능(起動不能)의 상태(狀態)까지 이르게 됐다.
정여사(鄭女史)는 남편(男便)의 건강회복(健康恢復)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백방(百方)으로 노력(努力)했지만 병세(病勢)는 수그러질 줄 모르고 제자리걸음이었다.
따라서 정여사(鄭女史)의 하루 일과(日課)는 몇 차례에 걸친 대소변(大小便) 받아내기와 그리고, 세수(洗手)를 시켜 주고 밥을 떠먹여 주는 일 등 진종일 남편(男便)에게만은 꼭 고기반찬을 대접(待接)하는 정성(精誠)을 보였다.
간혹 남편(男便)이 병세(兵勢)를 빌어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짜증을 낼 때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정여사(鄭女史)는 상냥한 얼굴로 그가 털어놓은 불만(不滿)을 인자(仁慈)한 손길로 감싸주곤 하였다.
정여사(鄭女史)의 간호(看護)가 오죽이나 정성(精誠)스러웠으면 한 집에 살고 있는 주인(主人) 아주머니도,
"글쎄 한 집에 살면서도 아줌마의 얼굴을 구경(求景)할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하루 종일(終日) 남편(男便) 곁에 꼭 지켜 앉아서 팔다리를 주물러 주고 세수(洗手)를 시켜 주는 등 정성(精誠)스럽게 간호(看護)를 하고 있었지 뭡니까."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8년(年)동안 관광(觀光)나들이 한 번 다녀오지 않을 만큼 정여사(鄭女史)는 좀처럼 해서 대문(大門) 밖에도 나가지 않고 남편(男便)을 지켰다.
"삭막한 도시생활(都市生活) 속에서 저렇게 어질고 순박(純朴)한 아주머니는 처음 봤습니다. 저 부인(婦人)은 남편(男便)을 하늘처럼 생각하고 있다기보다는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인근주민(隣近住民)의 말이다.
어려운 생활(生活) 속에서도 두 딸을 출가(出嫁)시키고 오늘도 남편(男便) 구환(救患)에 전심전력(全心全力)을 쏟고 있는 권여사(權女史), 그 여(女)야말로 근래(近來)에 보기드문 열녀상(烈女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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