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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씨(金鉉泰氏)의 불행(不幸)은 그가 10세(歲) 때부터 싹트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곧 불구(不具)인 모친(母親)을 외면(外面)한채 어디론가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부친(父親)의 비정(非情)스러운 행동(行動) 때문이었다.
그의 부친(父親)이 가족(家族)에게 남기고 간 것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하나는 땅 한 평(坪) 없는 가난이었고, 또 하나는 쌀 한 톨 없는 빈 쌀통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곧 바늘 끝처럼 날카로워진 모친(母親)의 신경질(神經質)이었다.
'그렇다. 쓰러져 가는 우리 가정(家庭)을 내 힘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어린 마음에도 이 가정(家庭)을 내 힘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어린 마음에도 이 가정(家庭)을 위해서 자신(自身)이 해야 할 임무(任務)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던 김씨(金氏)는, 국민학교(國民學校) 문턱을 나서기가 바쁘게 마을 이발소(理髮所)를 찾아가 취직(就職)을 부탁했다.
이발소(理髮所)에서 기술(技術)을 익히면서, 한편으로 한 쪽 다리가 불구(不具)인 모친(母親)에게 그가 지닌 효심(孝心)을 모두 다 바쳐 지성(至誠)껏 봉양(奉養)했다.
이를테면 잠자리에 들 때 이부자리를 깔아 준다든가, 화장실(化粧室)을 출입(出入)할 때는 꼭 부축을 했고, 외출(外出)할 때도 정류장(停留場)까지 업고 가는 등, 세상(世上)에 이런 효자(孝子)가 또 어디 있으랴 할 만큼 정성(精誠)들여 모셨다.
그러나 그의 모친(母親)은 칭찬(稱讚)보다는 핏대를 올리며 화내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유(理由)는 "고기반찬이 왜 밥상(床)에 보이지 않느냐?", "요새 유행(流行)하는 새 옷감을 떠 오너라." 아니면 "좀 더 효자(孝子)답게 이 어미를 받들어 모셔라."는 등등 하나같이 억지를 쓸 때도 그럴 때마다 김씨(金氏)는 고양이 앞에 움츠린 쥐, 모양으로 시종일관(始終一貫)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와 같이 고분고분 순종(順從)하는 것으로 모친(母親)의 노여움을 풀어 드렸다.
'티끌모아 태산(泰山)된다.'는 말도 있듯이, 김씨(金氏)는 10년(年) 동안 열심(熱心)히 일해서 꾸준히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마침내 그의 소망(所望)이었던 이발소(理髮所)를 경영(經營)함과 아울러 결혼(結婚)의 꿈도 성취(成就)했다.
눈만뜨면 자식(子息)을 못살게 굴던 그의 모친(母親)도, 이제 지극(至極)하고 변함없는 아들의 효성(孝誠)에 감동(感動)하여 한결조용해지셨다.
간혹 모친(母親)이 감기(感氣)라도 들면 김씨(金氏) 부부(夫婦)가 교대(交代)로 밤을 세워 지켜가면서 간호(看護)를 하는가 하면 맛있는 음식(飮食)도 빼놓지 않고 밥 상(床)에 올려놓는 등, 김씨(金氏) 못지않게 그의 아내도 웃어른을 봉양(奉養)하는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하기만 하였다.
"부부(夫婦)의 지극(至極)한 효심(孝心)이 호랑이 할머니를 잠재웠다." 이와 같이 마을 사람들이 칭찬할 만큼, 김씨(金氏)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의 아내 또한 효부중(孝婦中)의 효부(孝婦)였다.
이발소(理髮所)인 직장(職場)으로 가기 전(前)에 모친(母親)에게 꼭 인사를 하고 저녁에 돌아와서도 인사를 꼭 올리는 그의 생활습성(生活習性)과 예의범절(禮儀凡節)을 본받아, 지금에 와서는 온 마을 사람 모두가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의 미풍(美風)을 생활화(生活化)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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