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김귀선(金貴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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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1983년 4월 18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의성군 옥산면
효부(孝婦) 김귀선(金貴仙) 34세

김귀선(金貴仙) 여사(女史)는 그가 3세(歲) 때 부모(父母)와 사별(死別)한 후, 큰 오빠 손에서 장성(長成)했으니 어릴 때부터 부모(父母)의 따뜻한 정(情)을 모른 채 자라온 가련(可憐)한 여인(女人)이었다. 

사랑에 굶주린 김여사(金女史)는 교회(敎會)에 나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기쁨을 만끽(滿喫)하면서 살아왔다.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 그대로, 불우(不遇)한 사람을 만나서 작으나마 등불이 되어야겠다.'라고 마음먹고 있는 그의 앞에, 김여사(金女史)가 소원(所願)한 그대로 불행(不幸)한 청년(靑年)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와 결혼(結婚)한 남편(男便)은 출생(出生) 수개월후(數個月後) 맹인(盲人)이 되어버린 그런 불행(不幸)한 사람이었다. 

김여사(金女史)는 신혼(新婚)의 단꿈도 아랑곳 않고 결혼(結婚)하기가 바쁘게, 3,000여평(餘坪)에 달(達)하는 논밭을 혼자 힘으로 가꾸는 한편, 남편(男便)을 위해서는 눈이 되고 지팡이가 되고 손발이 되어 주는 등 그야말로 정성(精誠)을 다해 알뜰히 보살폈다. 

어디 그뿐이랴, 노환(老患)으로 고생(苦生)하는 시모(媤母)님에게도 그가 지닌 효심(孝心)을 모두 바쳐 지성(至誠)으로 봉양(奉養)했다. 

마을에서 즐거운 행사(行事)가 있는 날이면 시모(媤母)님을 손수 등에 업고 현장(現場)까지 모시고 가기도 했고,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앞 못 보는 남편(男便)에게 오늘 있었던 이런저런 행사소식(行事消息)을 구수하고 자상하게 들려 주기도 했다. 

남편(男便)이 외출(外出)할 때마다 그 녀(女)는 손을 붙잡고 동행(同行)하기도 했는데, 어느 해 여름에는 소낙비를 피한답시고 남편(男便)을 등에 업은 후 냇가를 건너다 물에 빠진 일도 있었다. 

그 후부터는 보슬비만 내려도 일절(一切) 외출(外出)을 삼가면서 남편(男便)을 알뜰히 지켜 줄 정도로, 그가 남편(男便)을 사랑하는 마음은 갸륵하기만 했다. 

어느 해 여름에는 극심한 가뭄을 이기기 위해서 김여사(金女史) 혼자 삽과 괭이를 들고 관정(管井) 2개소(個所)를 밤새워 판 일도 있었는데, 이 때 밤새 기다리던 남편(男便)이 밤길을 더듬거리면서 그를 찾아와 격려(激勵)한 흐뭇한 일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전(傳)해 들은 동민(洞民)들은 잉꼬 부부(夫婦)처럼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이들의 정경(情景)을 두고 견우직녀(牽牛織女)가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난 것 이상(以上)으로, 이들의 사랑을 부러워하였다. 

세 아들의 어머니이기도 한 김여사(金女史)는, 자식(子息)들에게 항상 각별(各別)이 효행(孝行)을 강조(强調)하기도 했는데, "너희들은 모두가 아버지의 등불이 되고 지팡이가 되어야 한다." 

입버릇처럼 이와 같이 말하는 김여사(金女史)는, 오늘도 교회(敎會)에 나가 이와 같이 간절한 새벽 기도(祈禱)를 하였다. 

"하느님 아버지, 이 목숨 다할 때까지 앞 못 보는 남편(男便)과 병(病)든 시모(媤母)님을 위해서 봉사(奉仕)할 수 있도록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로 인도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