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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전(餘年前)에 머슴살이를 하고 있는 가난한 농부(農夫)와 결혼(結婚)한 김정숙(金貞淑) 여사(女史)는 그 후(後) 4남매(男妹)를 낳고 어려운 살림을 꾸려왔다.
10여년전(餘年前)에 김정숙(金貞淑) 여사(女史)가 시집을 와 보니 당장 신혼(新婚)살림을 차려야 할 방(房)도 없었고, 거기다 단 한 평(坪)의 농토(農土)도 소유(所有)하지 못하는 가난한 집안이어서, 신혼(新婚) 첫 날부터 나온 것은 한숨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이들 부부(夫婦)는 남의 집 사랑 방(房)에 세(貰)들어 살면서 열심히 땀 흘려 일했다.
"농토(農土)가 우리 손에 들어올 때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이겨나갑시다. 땀 흘려 일하면 반드시 땀 흘려 일한 만큼 대가(代價)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일하다가 죽기야 하겠수? 죽을 힘을 다해서 일해 봅시다. 네, 여보?"
마침내 이들은 600여평(餘坪)의 농토(農土)를 자기(自己) 소유(所有)로 만드는 꿈을 성취(成就)했다.
비록 많지 않는 농토(農土)이긴 했지만, 동이 트면 일터로 달려가 하루의 행복(幸福)을 땅 속에서 캐 내면서 나름대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5년전(年前)부터 남편(男便)의 시력(視力)이 약화(弱化)되기 시작해서 병원(病院)을 찾아다니면서 치료(治療)해 보았지만, 시력(視力)은 더욱 약화(弱化)되어 갔고 끝내 앞 못 보는 담달봉사가 되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현실(現實)앞에 김여사(金女史)는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하면서 모진 운명(運命)을 원망(怨望)해 보았지만 현실(現實)은 냉혹(冷酷)했다.
'이래선 안 된다. 지금부터 내가 남편(男便)을 대신(代身)해서 가장(家長)노릇을 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앞 못 보는 남편(男便)의 손발이 되어서 그이가 더 절망(絶望)하지 않도록 희망(希望)을 안겨 주어야 한다.'
김여사(金女史)는 이와 같이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한 후, 다음 날부터 어린 자식(子息)을 등에 업고 품팔이와 취로사업(就勞事業)등 손에 잡히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始作)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맹인(盲人)이 된 남편(男便)을 위해 손발이 되고 지팡이 구실도 하면서 언제나 웃는 얼굴로 봉양(奉養)해 왔다.
그리고 일터에서 돌아오면 그가 하룻동안 보고 들은 것을 마치 소설(小說)처럼 구수하고 재미있게 엮어서 남편(男便)에게 들려 주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飮食)도 자식(子息)들 몰래 품에 숨겨 와서 대접(待接)하는 등, 그의 놀라운 정성(精誠)은 실로 가상(可賞)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김여사(金女史)는 지금껏 그 흔해빠진 계(契)모임이나 관광(觀光)나들이 한 번 다녀오지 않았다.
간혹 바람도 쐴 겸 나들이를 다녀오자는 인근(隣近) 부녀자(婦女子)들의 권유(勸誘)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김여사(金女史)는 "남편(男便)이 눈을 뜨는 날 꼭 따라가겠다."는 말 한 마디로 거절(拒絶)을 했다.
앞 못 보는 남편(男便)과 살아가는 일이 무척 고달프고 고역(苦役)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어제도 오늘도 인내(忍耐)와 노력(努力)으로 역경(逆境)을 극복(克服)하면서 살아갔다.
무학(無學)인 그도 '참을 인(忍)'자(字)만은 눈을 감고도 쓸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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