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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향(河相香) 여사(女史)가 걸어온 60 평생(平生)의 인생역정(人生歷程)은 그야말로 가시밭길 그것이었다.
그는 사내(四耐)의 뜻 그대로, 첫째 냉혹(冷酷)한 인생(人生)을 잡아왔고, 둘째 괴로움을 참아왔고, 세째 번거로움을 참아왔고, 넷째 한가로움을 견디어 온 문자(文字)그대로 사내(四耐)의 참 실천자(實踐者)였다.
하여사(河女史)도 6.25의 비극(悲劇)이 낳은 슬픔을 지니고 있으니 그것은 곧 남편(男便)의 부상(負傷)이었다.
그의 남편(男便)은 사변(事變) 당시(當時) 척추(脊椎) 부상(負傷)을 당하고 줄곧 육군병원(陸軍病院)에서 치료(治療)를 받다가 명예제대(名譽除隊)를 했는데, 집에 돌아온 그 후(後)부터가 문제(問題)였다.
그의 남편(男便)은 꼼짝달싹 못하고 밤낮없이 누워 있어야만 했고, 대소변(大小便)도 하여사(河女史)의 손을 빌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산 송장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때부터 그는 남편(男便)의 고통(苦痛)과 괴로움을 사랑으로 감싸주며 희망(希望)과 용기(勇氣)를 복돋아 주었고, 한편으로는 삶의 의지(意志)를 굳건히 심어 주면서 항상(恒常) 구김살 없는 밝은 표정(表情)으로 간호(看護)에 임(臨)해 왔다.
1,500여평(餘坪)의 전답(田畓)도 손수 그가 가꿔가면서 때로는 품팔이로 어려운 가계(家計)를 이어온 하여사(河女史)는, 동민(洞民)들의 따가운 충고(忠告)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그래, 허리도 쓰지 못하는 남편(男便)아니우? 오줌똥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平生) 동안 받아내야 할 게 아니냔 말이예요? 인정사정(人情事情) 보다가 자기(自己) 청춘(靑春) 썩히고 인생(人生) 망(亡)치니 눈 딱감고 개가(改嫁)하도록 해요. 인생(人生)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고생(苦生)을 사서 하냔 말이우?"
이와 같은 동정(同情)어린 충고(忠告)가 수시(隨時)로 들어왔지만 하여사(河女史)의 대답(對答)은 언제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뿐이었다.
심지어 어느 날 그의 남편(男便)도 이런 말을 했다.
"여보, 나 때문에 당신 고생(苦生)하지 말고 새로운 인생(人生)을 찾도록 노력(努力)해 보구랴."
남편(男便)이 그런 말을 할 때 하여사(河女史)는 울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나를 이 집안에서 내쫓지 말아요. 난 이 집안의 귀신(鬼神)이 되기를 맹세(盟誓)했다니까요."
그 후(後)부터 그의 남편(男便)은 다시는 그런 말을 안 했고 하여사(河女史)는 그 날을 계기(契機)로 남편(男便)을 더욱 극진(極盡)히 사랑하면서 보살폈다.
그의 남편(男便)이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는 재미있는 고담(古談)책을 구수하게 읽어 주기도 하였고, 아무리 밤이 깊어도 남편(男便)이 잠든 다음에야 비로소 하여사(河女史)도 자리에 누웠다.
어느 해 가을에는 물고기가 먹고 싶다는 말에 냇가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 오기도 했고, 매일(每日)같이 누워 있는 몸이 더 허약(虛弱)해질까 봐 몸에 좋다는 약초(藥草)를 캐다가 달여서 복용(服用)시키는 등, 부내부천(夫乃婦天) 그대로 남편(男便)을 곧 하늘로 알면서 알뜰히 섬기는 그의 놀라운 정성(精誠)은 타인(他人)의 탄사(歎辭)를 자아낼 정도였다.
꼬박 병석(病席)에 누운 남편(男便)을 자그마치 30년(年) 동안 뒷바라지해 온 하여사(河女史).
30년(年)이면 강산(江山)이 세 번은 변(變)했으련만, 그의 마음은 단 한번도 변(變)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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