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김태분(金太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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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1985년 4월 17일)
독행상(篤行賞)
대구직할시 중구 서야동
열부(烈婦) 김태분(金太分) 68세

김태분(金太分) 여사(女史)는 그의 나이 17세(歲) 때 이차암씨(李且岩氏)와 결혼(結婚)했는데, 시집에 보니 시모(媤母)님은 병석(病席)의 몸이었다. 

달콤한 신혼(神婚)의 꿈도 잊은 채 시모(媤母)님 곁에 지켜 앉아서 정성(精誠)들여 간호(看護)를 해 온 그는, 인근주민(隣近住民)들로부터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한 며느리라는 칭찬(稱讚)을 들을 정도로 외출(外出)도 일절(一切) 삼가고 구환(救患)에만 전념(專念)하였다. 

그러한 보람도 없이 1년후(年後) 그의 시모(媤母)님은 그만 별세(別世)하고 말았다. 

남편(男便)은 직물공장(織物工場) 사장(社長)이었고, 이여사(李女史)는 어였한 사장부인(社長婦人)이었지 만, 그는 조금도 그런 내색(內色)을 하지 않고 공장(工場)에 직접(直接)뛰어들어 일반(一般) 직공(職工)들과 함께 땀흘려 일하면서 남편(男便)대신, 꽃피운 노사간(勞使間)의 향기(香氣)를 지우지 않기 위해서 전심전력(全心全力)해 왔다. 

20여년간(餘年間)의 긴 세월(歲月)을 이와 같이 생활(生活)해오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오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불경기(不景氣) 바람에 그들의 가정(家庭)에 암운(暗雲)이 덮치기 시작하였다. 

경기불황(景氣不況)과 경영부실(經營不實)로 김여사(金女史)의 남편(男便)이 경영(經營)하던 공장(工場)은 마침내 엄청난 빚을 안고 도산(倒産)되었으며, 이와 같은 충격(衝擊)으로 그의 남편(男便)은 실의(失意)와 절망(絶望)속에서 우왕좌왕(右往左往)하다가 마침내 중풍(中風)으로 병상(病床)에 눕게 되는 비참(悲慘)한 현실(現實)을 맞게 되었다. 

그 날부터 김여사(金女史)는 유명(有名)하다는 병(病), 의원(醫院)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치료(治療)에 전력(全力)을 다해 보았으나 백약(百藥)이 무효(無效)였고 병세(病勢)는 더욱 악화(惡化)되어 기동(起動)마저 불자유(不自由)스러워졌지마는, 그는 조금도 실망(失望)하거나 낙심(落心)하지 않고 더욱 정성(精誠)들여 남편(男便)을 보살폈다. 

이와 같은 와중(渦中)에서도 슬하(膝下)의 2남(男) 2녀(女)를 모두 대학(大學)까지 보내고 결혼(結婚)까지 시켜 행복(幸福)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가장(家長)아닌 가장(家長)으로 그에게 맡겨진 책무(責務)를 다해 왔다. 

때로는 남편(男便)이 병석(病席)에서 짜증을 내고 이유(理由)없는 반항(反抗)으로 그의 마음을 괴롭힐 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김여사(金女史)는 그럴 때 마다 '참을 인(忍)'자(字)를 머리 속에 그리면서 상냥한 미소(微笑)로 남편(男便)의 불만(不滿)을 감싸주곤 하였다. 

부부(夫婦)는는 모름지기 의(義)로써 화친(和親)하고 은혜(恩惠)로써 화합(和合)해야 한다는 선현(先賢)의 말 그대로, 김여사(金女史)는 오늘도 남편(男便)곁에 지켜 앉아서 이런 말로 위로(慰勞)를 했다. 

"과거(過去)는 일절(一切) 강(江)물에 흘려 보내세요. 당신은 지금 지나온 추억(追憶)과 아쉬움 때문에 건강(健康)의 회복(回復)을 늦추고 있는 거예요, 실망(失望)하지 말고 잃었던 건강(健康)부터 되찾도록 노력(努力)해 봅시다. 당신은 다시 재기(再起)할 수 있어요." 

이와 같은 간곡(懇曲)한 말로 위로(慰勞)와 격려(激勵)를 하면서, 어떻게 하든 남편(男便)의 병세(病勢)를 꺾어 보려고 모진 애를 쓰고 있지마는, 좀처럼 해서 건강회복(健康回復)의 열쇠를 찾기는 어려웠다. 

반장직(班長職)을 맡고 이웃과 우의(友誼)도 돈독(敦篤)히 나누고 있는 김여사(金女史)는, 오늘도 중풍(中風)에 좋다는 약(藥)을 구(求)하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