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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1960년 2월 27일)
독행상(篤行賞)
대구시(大邱市) 대명동(大明洞) 888
효부(孝婦) 천삼순(千三順) 36세
군(軍)에서 전상(戰傷)을 입고 불구자가 돼 제대(除隊)한 남편을 대신하여 시부모(媤父母)와 4명의 자녀 생계를 맡고 있다.
남편은 6.25동란 당시 입대해 영천(永川) 전투에서 다리 하나를 잃었으며 시부모(媤父母)는 70세의 고령(高齡)으로 건강이 좋지 못해 생계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5천환의 자금으로 시작한 행상(行商)은 식구를 먹여 살리기에 박찼다. 삶의 의욕을 잃은 남편은 자식들과 부모를 구박하며 자포자기(自暴自棄)에 빠져 있어 가정은 언제나 불안과 질시(嫉視)로 가득 찬 분위기였다.
천(千)씨는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어려움보다도 폭발할 것 같은 가정의 분위기를 해결하는 일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천(千)씨의 시부모(媤父母)에 대한 효성(孝誠)으로 서서히 정화되어 갔다.
남편의 저항이 심할수록 그녀의 효성(孝誠)은 가정을 압도했다. 행상(行商)을 떠나기 전 반드시 시부모(媤父母)를 뵈었으며, 저녁 늦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 와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1시간 이상씩 시부모(媤父母)와 자리를 같이 했다.
결국 남편은 천(千)씨의 효성(孝誠)에 감동돼 편안하고 안락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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