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수남(李壽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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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1960년 2월 27일)
독행상(篤行賞)
달성군(達城郡) 다사면(多斯面) 달천동(達川洞) 100
효부(孝婦) 이수남(李壽南) 31세

평소 병약했던 남편은 결혼 4년 만에 중병을 얻어 6개월 동안 사경을 헤매다 세상을 떠났다. 

시부모(媤父母)와 두 자녀의 가장(家長)이 된 그녀는 손바닥만한 농토에 매달려 힘겨운 생활을 해 왔으나 지난해 또 다시 시부(媤父)까지 타계(他界)했다. 

70세인 노쇠한 시모(媤母)와 두 자녀의 가장이된 李씨는 품팔이, 공사판 등을 돌아다니며 힘겹게 생계를 벌어야 했다. 시모(媤母)는 6년 전 무려하게 농사일을 거들다가 쓰러져 반신불수(半身不 隨)의 불구자가 됐다. 

시모(媤母)를 회복시키기 위한 李씨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로 끈질기고 정성스러웠다. 치료비를 마련할 수 없자 산약초를 구한다며 일주일간 여자의 몸으로 산속에서 보내기도 했으며 두더지, 뱀 등 동물만도 1백여 마리나 잡아 삶아드리는 정성을 쏟았다. 그 동안 가산은 쪼들릴 대로 쪼들려 끼니를 굶어야 하는 때가 많았지만 시모(媤母)에게는 언제나 중류(中流) 가정 정도의 음식을 공양했다. 

지난해에는 시집 올 때 마련해온 고이 간직했던 옷가지들을 모두 내다 팔아 시모(媤母) 약값을 마련하기도 했다. 

6년 동안 계속된 그녀의 효성(孝誠)은 시모(媤母)의 병을 회복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