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손숙영(孫淑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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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1960년 2월 27일)
독행상(篤行賞)
대구시(大邱市) 중구(中區) 도원동(桃園洞) 3
효부(孝婦) 손숙영(孫淑榮) 44세

6.25동란 때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피난을 와 피난민 수용소(收容所)인 도원동(桃園洞) 수용소에서 생활하면서 두부장사로 식구의 생계를 이끌고 있다. 

병약한 남편은 한 달에 20일은 자리에 누워 있으며 80세의 노시모(老媤母)도 건강이 좋지 못해 빈약한 살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3년간이나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도 孫씨의 가정은 언제나 정결하고 화목하다. 두부함지를 머리에 이고 하루 종일 행상을 다니는 孫씨는 생활의 어려움을 안락한 가정과 정직하고 성실한 가족의 생활태도로 이겨내 여유를 갖는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은 해동소학(海東小學) 「명륜(明倫)」 편에서 “효도(孝道)는 온갖 행실의 근원(根源)이다[孝爲百行之源].”라고 말하고 있다. 孫씨 가정이 생계의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孫씨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노시모(老媤母)에 대한 효성(孝誠)이 가족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정의 일은 모두 시부(媤父)의 뜻을 물어서 실행하고 있으며 봉양(奉養)과 공경으로 시부(媤父)를 섬기고 있다. 자녀들이 孫씨의 효(孝)를 따르고 있는 것은, 말없이 실천하고 있는 효(孝)가 온갖 행실의 근원(根源)임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