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박은수(朴銀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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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1960년 2월 27일)
독행상(篤行賞)
달성군(達城郡) 현풍면(玄風面) 중동(中洞) 180
효부(孝婦) 박은수(朴銀壽) 30세

남편 정성득(鄭成得) 씨는 6.25동란 때 북괴군에게 납치되어 간 후 소식이 없다. 

당시 팔공산(八公山) 일대에서 준동(蠢動)하고 있던 빨치산 본부의 소재를 발견하고 경찰서에 신고하여 공산분자 20여 명을 사살케 하는 공적(功績)을 세운 것이 화근(禍根)이 되어 납치된 것이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당한 비극이었으나 朴씨는 남편이 언제인가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걸고 딸 하나와 시적모(媤嫡母), 시모(媤母)를 얼마 되지 않는 농토를 가꾸어 부양해 왔다. 

장성한 시동생이 둘이나 있었으나, 형의 원수를 갚는다며 같은 날 모두 군에 입대해 20대의 젊은 여인이지만 가정을 이끌어야 했다. 

불행은 계속 겹쳐 76세의 시적모(媤嫡母)가 뇌일혈(腦溢血)로 쓰러져 기동을 하지 못하는 불구자가 됐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치료약을 구해 와야 하는 등 고달픈 일거리가 쌓여갔지만 그녀는 힘든 내색 한 번 안 했으며 인내와 사랑으로 병든 시적모(媤嫡母)를 보살폈다. 시적모(媤嫡母)는 3년 만에 타계(他界)했으나 시적모(媤嫡母)를 이어 이번에는 시모(媤母)가 같은 증세로 쓰러져 5년째 정성으로 뒷바라지를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