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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人性)이 남달라 불우(不遇)한 처지(處地)에 있는 사람을 그냥 두고는 지나치지 못하는 장재옥(張在玉) 여사(女史)는 양로원(養老院)이나 경로당(敬老堂), 이웃의 불우(不遇)한 사람들을 진심(眞心)으로 보살피고 있다.
1984년(年)부터 해마다 년말(年末)이 가까워지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선산읍(善山邑) 성심 양로원(養老院)의 사고무친(四顧無親)의 외로운 노인(老人)들을 위하여 비산동(飛山洞) 3통(統) 부녀회원(婦女會員)과 인근주민(隣近住民)들의 협조(協助)를 얻어 쇠고기와 떡 등을 준비(準備)하여 방문(訪問)하고 식사(食事)를 대접(待接)함과 아울러 정다운 대화(對話)로 노인(老人)들의 외로움을 달래주어 인근주민(隣近住民)들에게 경로심(敬老心)과 사회봉사심(社會奉仕心)을 일깨워 주고 있다.
또, 평소 고아(孤兒)들에게도 관심(關心)이 깊던 장여사(張女史)는 어려운 여건(與件) 속에서 공부하고 있는 금오공고(金烏工高) 3년생(年生)과 모자관계(母子關係)를 맺고 그로 하여금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모정(母情)을 느끼도록 힘쓰며, 다리를 다쳤을 때는 의족(義足)까지 마련해 주어 더욱 마음 흐뭇하게 해 주었다.
또 아들과 손녀(孫女) 2명(名)이 함께 살고 있던 87세(歲)의 김분조 노파(老婆)의 아들이, 가족(家族)을 버려둔 채 가출(家出)한 딱한 처지(處地)를 그냥 볼 수 없어 김노파(金老婆)는 양로원(養老院)으로 그의 두 손녀(孫女)는 생활보호대상자(生活保護對象者)로 책정(策定)되도록 주선(周旋)해 주기도 했다.
마을 노인(老人)들에게는 비산동(飛山洞) 관내(管內)의 3개(個) 통장(統長) 및 부녀회원(婦女會員)과의 협의(協議)를 주도(主導)하여 매년(每年) 통(統) 단위(單位) 윤번제(輪番制)로 어버이날 경로(敬老)잔치를 베풀도록 했는데, 1983년(年)부터 실시(實施)하여 오늘까지 계속(繼續)되고 있다.
불우(不遇)한 이웃과 외로운 노인(老人)들을 정성(精誠)으로 돕는 일뿐만 아니라 가정(家庭)에서는 화목(和睦)을 신조(信條)로 하는 알뜰한 효부(孝婦)요, 양처(良妻)요, 현모(賢母)이다.
장재옥(張在玉) 여사(女史)는 평소 자신(自身)이 둘째 며느리가 되어 시부모(媤父母)님을 모시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어왔는데, 불행(不幸)하게도 손위 동서(同婿)가 죽고 시부(媤父)님마저 별세(別世)하시니 홀 시모(媤母)님을 모셔다가 부도(婦道)를 다하여 정성(精誠)껏 봉양(奉養)하고 있다.
또한 2남(男) 2녀(女)의 어머니로서 자녀(子女)들을 양육(養育)하는 데 있어서는, ‘빛과 소금이 되자’ 라고 가훈(家訓)아래 한 치의 빗나감도 없이 남편(男便)과 합심(合心)하여 훌륭하게 교육(敎育)함에도 정성(精誠)을 다하고 있다.
또한 형제간(兄弟間)에도 우애(友愛)가 깊은 장여사(張女史)는 1986년(年)에 손아래 동서(同婿)가 동산병원(東山病院)에서 수술(手術)을 받았을 때는, 하루도 빠짐없는 극진(極盡)한 간호(看護)가 너무도 정성(精誠)스러웠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眞正)한 간병(看病)이었으므로 동서(同婿)는 물론 그를 지켜본 모든 이가 감복(感服)해 마지않았다.
가정(家庭)에서는 효행(孝行)과 화목(和睦)에 전력(全力)하고 밖에서는 경로(敬老心)을 적극(積極) 발휘(發揮)하고 불우(不遇)한 사람에게는 자기(自己)일처럼 온정(溫情)을 쏟아 보살피는 장여사(張女史)의 갸륵한 행적(行績)을 높이 칭찬(稱讚)하지 않는 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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