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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딸로 태어난 김혜경양(金惠慶孃)은 직업(職業)이 일정(一定)하지 않은 아버지와 하반신(下半身)이 불구(不具)인 어머니와 함께 생활보호대상자(生活保護對象者)로서 단간(單間) 셋방(貰房)에서 살고 있으나 성격(性格) 명랑(明朗)하고 근면(勤勉)한 중풍(中風) 2년생(年生)으로 학교생활(學校生活)에도 모범적(模範的)인 학생(學生)이다.
김양(金孃)의 모친(母親)은 그를 낳고 산후(産後)가 불순(不順)한 데다가 영양실조(營養失調)까지 겹쳐서 종전(從前)부터 앓고 있던 관절염(關節炎)이 악화(惡化)되어, 급기야(及其也)는 하반신(下半身)을 쓰지 못하는 불구자(不具者)가 되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이 딱한 어머니의 정황(情況)을 보고 자라면서, 어머니의 손발이 되다시피 하여 어린 시절(詩節)부터 시봉(侍奉)을 잘 들어왔다.
김양(金孃)을 낳은 후(後)부터 바깥 출입(出入)을 하지 못하는 생활(生活)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김양(金孃)은 철이 들고 부터는 병원(病院) 등에 출입(出入)을 할 때는 어머니의 발이 되어 드렸다. 그리고, 대소변(大小便)을 받아내는 일이라든지 식사(食事) 장만하기나 옷가지나 침구류(寢具類)의 빨래하기, 청소(淸掃) 등 크고 작은 잡다(雜多)한 집안 일을 도맡아 해야만 했다.
하교(下校) 후(後)에는 하루 생활(生活) 중 학교(學校)에서 일어났던 일이나 집의 안팎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을 빼놓지 않고, 어머니에게 소상(昭詳)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해 드려 지리함을 달래 드리기도 하며 무엇이든 집안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도맡아 했다.
그러면서도 김양(金孃)은 무엇 하나 임의(任意)로 처리(處理)하는 일이 없었고 사생활(私生活)의 모든 것까지도 어머니의 뜻을 물어서 처리(處理)해 나가는 순종(順從)의 예의(禮儀)도 잊지 않았다.
13세(歲)의 소녀(少女)가 천진난만(天眞爛漫)하게 한창 뛰놀 때임에도 불구(不拘)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도 오직 어머니에 대한 지극(至極)한 사랑과 효성(孝誠)으로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처리(處理)해 나가며, 어른도 하기 힘드는 일을 줄곧 해 나가는 굳건한 김양(金孃)을 보고 주위(周圍)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나같이 감탄(感歎)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 녀(女)의 부친(父親)은, 모친(母親)이 병석(病席)에 누워 있으므로 불편(不便)함이 이루 비길 데 없었으나, 어린 외동딸이 돌보아 주는 뒷바라지가 너무나 기특하고 대견스러워 물끄러미 바라만 보면서, 그 애처로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만 한다고 한다.
참으로 어린 소녀(少女) 김양(金孃)이야말로, 만고효녀(萬古孝女) 심청(沈靑)이 못지 않는 효녀(孝女)라 아니할 수 없으며 특히 현세(現世)의 청소년(靑少年)들에게 귀감(龜鑑)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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