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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옥선(洪玉仙) 여사(女史)는 1957년 25세 때 김상태(金相泰)씨와 결혼하였는데, 부유한 시가(媤家)는 아니었으나 단란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였다.
평범한 농부의 아내로서 내조에 힘써 나날이 더해가는 행복감에 아들도 낳고 삶의 보람을 느끼며 생활하였다.
특히 시모(媤母)님을 정성을 다하여 모시고 항상 뜻을 살피어 불편함이 없도록 미리 알아서 척척 처리해 나가니 시모(媤母)님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
이와 같이 단란하게 살아오던 중, 1978년에 남편이 타계하자 홍여사(洪女史)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하였으나, 자식을 앞세운 노시모(老媤母)님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 자신의 비통은 삼키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애절하게 슬퍼하시는 시모(媤母)님을 위로하였다.
그러면서 남편이 하던 농사일을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감당하기란 여간 힘겹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늙으신 시모(媤母)님과 자식을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여 그 일들을 능히 해나갔다.
그런데, 남편과 사별한 슬픔도 채 가시기 전에 1979년 시모(媤母)님게서 노환(老患)으로 병석에 눕게 되니 눈앞이 캄캄하였으나 정신을 차리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병(病)구완하는 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성과 심혈을 쏟았다.
거동을 못하시는 시모(媤母)님의 손발이 되어 대소변을 받아 내는 일을 물론, 의복 가지나 침구의 세탁과 식사의 시중 등 병(病)구완에 지성으로 시봉(侍奉)에 열중하였다.
8년간이나 쉴 줄 모르는 홍여사(洪女史)의 시모(媤母)님 시봉(侍奉)에 다한 성심(誠心)이 감옹하였음인지 그렇게도 오랜 노환이 점차 회복의 기운이 보이더니 지금은 집안을 거닐 수 있을 만큼 건강이 좋아졌다.
홍여사(洪女史)의 기쁨은 그 어디에도 비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고난 속에서도 슬하에 1남 3녀를 남 못지 않는 교육열로 그들을 보살핌에 있는 힘을 쏟았으므로 하나같이 착하고 효성(孝誠)스러우며 고등학교 교육까지 마치도록 하여 훌륭한 사회인으로 길러냈다.
점차 퇴색이로에 있다고들 하는 경로효친사상(敬老孝親思想)을 홍여사(洪女史)는 실천 궁행(躬行)하여 모든 이웃 주미이나 자식들에게까지 귀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여성들이 흔히 싫다고 뿌리쳐 버릴 일이며, 더구나 ‘장병(長病)에 효자(孝子)없다'고들 하는데도 8년간에 걸친 힘드는 간병을 짜증내는 일이 없이 화순(和順)한 얼굴로, 한결같이 해 나가는 효부(孝婦)의 여인상을 보여 준 홍여사(洪女史)의 행적에 그 누가 칭찬에 인색해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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