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김옥자(金玉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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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1988년 4월 22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영양군 석보면
효부(孝婦) 김옥자(金玉子) 50세

어려서 익혀 둔 버릇은 평생을 두고 변하지 않는 성격을 형성한다고 한다. 

김옥자(金玉子) 여사(女史)는 어릴 때부터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는 가르침을 부모(父母)로부터 철저하게 받아 왔기 때문에 역경에 처해서도 효심(孝心)은 신앙처럼 더욱 짙어지기 마련이었다, 

김여사(金女史)는 7남매 중의 여섯째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사를 도우며 부덕(婦德)을 닦아오다가 1961년 23세에 최병길씨와 결혼하여, 시부모(媤父母)님을 모시고 농사일과 가사에 몰두하면서 시부모(媤父母)님을 극진히 모시고 살았다. 

친정에서 어렸을 때부터 익혀 몸에 젖어 있는 경로효친(敬老孝親)의 정신적 바탕은 변함없어 시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 어른을 대할 때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맑고 밝은 얼굴로 공손하여 예의(禮儀)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남편에게는 항상 순종하며 하늘같이 받들고, 시부모(媤父母)님에게는 언제나 공경(恭敬)과 양지(養志)와 순종(順從)의 효(孝)를 다하였다. 

그래서 이웃들로부터 항상 효부(孝婦)란 칭찬을 많이 들어왔다. 

이와 같이 가난한 살림살이면서도 효성(孝誠)을 다하여 화목한 가정으로 꾸려가던 중 3년전부터 78세의 시모(媤母)님이 노환에다 중풍까지 겹치게 되어 바깥 출입도 못하고 몸져 누우니 진심으로 걱정하며 밤낮으로 정성껏 간호하였다. 

조석으로 안후(安候)를 여쭙고 매일같이 대소변의 뒤처리는 물론 음식을 때에 맞추어 직접 떠서 수발하고 더러워진 침구나 의복의 세탁을 자주 하여 깨끗이 해 드리고 타인이 혐오하는 일이 없도록 청소에 힘쓰는 일을 배전(倍前)으로 항상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좋아하시는 음식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구하여 대접하였다. 

병(病)이 심해진 어느 때는 차가 없는 밤에 8km나 떨어진 석보면(石保面) 소재지까지 약(藥)을 구하기 위하여 다녀오는 일도 서슴지 않았으며 이렇듯 병(病) 구완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3남 1녀의 어머니로서 어려운 살림살이나 고된 시부(媤父)님의 병구완에 짜증 한 번 내지 않았으며 이렇듯 부드럽고 웃음 띤 얼굴로 시봉(侍奉)에 성력(誠力)을 다하였다. 

사소한 일이라도 시모(媤母)님의 뜻을 물어 결정하고 실행하는 김옥자(金玉子) 여사(女史)의 효행(孝行)에 주위 사람들의 칭송(稱頌)이 자자하다. 

이는 모든 이의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