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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남편을 여의고 병증의 팔순(八旬) 노시부모(老媤父母)님을 성심껏 간병(看病)하며 의논할 곳도 없는 5남매를 훌륭히 길러낸 김분화(金粉花) 여사(女史)는 진정 훌륭한 며느리이며 장(壯)한 어머니라 하겠다.
김여사(金女史)가 하늘과 같이 믿어 온 그의 남편이 8년 전에 타계하였다.
그 동안 가사문제, 자녀교육문제 등 허다히 어려운 일이 많았는데 의논할 상대도 없이 혼자 힘으로 갖은 역경을 극복해 왔다.
그런데 시부(媤父)님께서 연로해서인지 6년전부터 수족마비(手足痲痺)에 기억상실증(記憶喪失症)까지 겸하여 행동거지가 불편하게 되니 매일같이 대소변을 받아 내며 여러 가지로 간병(看病)함에 얼굴 한 번 찡그림이 없이 정성껏 모시었다.
가세마저 넉넉지 못하였는데 혼자 힘으로 가계를 꾸려야 하며, 농사일은 물론, 시부모(媤父母)님을 봉양(奉養)하고 여러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함은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거기에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4년 전부터는 시모(媤母)님께서 노망기(老妄氣)로 정신분열증(精神分裂症)을 일으켜 사리(事理)를 분별하지 못하니, 83세의 시부(媤父), 82세의 시모(媤母) 양위(兩位)분을 모심에는 너무도 힘드는 극한상황이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가업과 시부모(媤父母)님 병(病)구완에 오직 효심(孝心)으로 성력(誠力)을 다하니, 오죽했으면 보는 이로 하여금 애련(哀憐)해 하지 않는 이가 없고, 모두가 입을 모아 극찬해 마지 않을까.
자신도 당뇨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이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오직 시부모(媤父母)님을 위하여 효(孝)를 다하면서 자녀를 돌보아 훌륭히 성장시켜 떳떳한 사회인으로 진출시킨 장(壯)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시부모(媤父母)님의 시봉(侍奉)과 자녀들의 뒷바라지에 촌가(寸暇)도 없는 김여사(金女史)는 봉임정신(奉任精神)도 남달라 평소에 이웃과의 화합을 도모키 위해서 마을 무녀회 등의 모임에 적극 참여하여 마을 환경개선과 주변정화에 힘쓰는 한편, 마을의 길흉사(吉凶事)에는 자신의 일처럼 성력(誠力)을 쏟아 동민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남편과 사병하고 병석에 있는 노시부모(老媤父母)님을 지극한 효성(孝誠)으로 봉양(奉養)하고 있음은 점점 퇴색되어가는 우리의 전통윤리를 계승(繼承) 재기(再起)시키는 표상(表象)이 아닐 수 없다.
수차 효부표창(孝婦表彰)이 거론 된 바 있으나, 그 때마다 자식된 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바를 한 것 뿐이라며 완강(頑强)하게 거절한 일 등은 주위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우러러 보게 한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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