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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림(朴水林) 여사(女史)는 엄격한 유가(儒家)의 전통을 숭상하는 가정에서 7남매 중 맏딸로 출생하여 어릴 때부터 철저한 부도교육(婦道敎育)을 받아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하고 어린 동생들을 돌보아 주위의 칭송을 받아왔다.
박여사(朴女史)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사를 돌보며 한국전통의 가정교육을 바탕으로 부덕(婦德)을 닦아 23세 때 인접면의 정문길씨(鄭文吉氏)와 결혼하였다.
시가(媤家)에서는 평소 익혔던 대로 시부모(媤父母)님을 모시는 일, 남편을 섬기는 일, 자녀를 양육하는 일 등 무엇하나 흠잡을 것 없는 착실한 행실은 인근에서 칭송의 화제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렇게 충실한 가정생활을 해 오고 있던 1983년 4월 시모(媤母)께서 심장마비(心臟痲痺)로 갑자기 별세하시고 슬픔의 눈물도 미처 마르기 전에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이번에는 시부(媤父)께서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半身不隨)에 언어장애(言語障碍)까지 겹치니, 남편과 힘을 모아 백방으로 구약을 하고 시탕(侍湯)하며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찾아서 최선을 다 하였으나 별다른 효험이 없었다.
시부(媤父)님의 병세는 날로 짙어만 가니 안타까운 심정에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빌어 보기도 했으나 역시 하늘은 무심하기만 한 것 같았다.
대소변 받아내기, 수시로 방뇨한 침구와 의복류의 세탁, 음식을 적시에 드리기 등 병(病)구완으로 쉴 틈이 없었지만, 힘들면서도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일 없이 항상 온화한 얼굴로 시부(媤父)님을 대하니, 시부님은 비록 말은 못하나 ‘착하고 장한 며늘아, 수고가 많구나, 정말 고맙다.’라고 하는 깊은 심정을 시부(媤父)님의 눈빛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4년 여(餘) 동안을 이와 같이 시부님을 지성으로 간병(看病)한 결과, 지금은 식사는 전과 다름없이 잘 하시며 79세의 노령 같지 아니하고 비록 반신불수의 병자이긴 하나 얼굴에는 화색(和色)이 감돈다는 주변의 이야기로 미루어, 이는 자부(子婦)인 박여사(朴女史)의 한결같이 지극했던 효성(孝誠)임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가정생활에서도 항상 근검절약(勤儉節約)과 내핍생활(耐乏生活)을 실행하여, 어려운 가정 생활이면서도 자녀를 대학까지 진학시키는 등 2남 1년를 모두 훌륭히 키워 부족함이 없는 사회인으로 성장케 한 박여사(朴女史)의 행적은 세인(世人)의 모범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시부(媤父)님을 지성으로 시봉(侍奉)한 효행(孝行)이야말로 요즘은 같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효부의 표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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