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박영순(朴永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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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1988년 4월 22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달성군 가창면
효부(孝婦) 박영순(朴永順) 26세

사회란 각기(各其)의 이해관계로 헐뜯고 이(利)가 되지 않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이 상정(常情)이다. 

사랑으로 조건 없이 맺어져야 할 부부 사이에서도 이해로 타산하는 각박한 인심은 눈물로 얼룩지고 한숨으로 한탄(恨歎)하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한 세태에 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하지(下肢)가 마비된 불우한 청년을 위하여 자신의 소중한 평생을 던져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용기(勇氣)와 희망(希望)을 주게 함도 갸륵한 일이라 하겠으나, 노시부모(老媤父母)를 극진히 모시는 그 효심(孝心)은 하늘이 감동할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박여인(朴女人)은 전남(全南) 신안군(新案郡) 도초면(都初面) 한발리에서 부유한 집안의 5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나서, 여고를 졸업하고 취직자리를 따라 친척이 있는 이곳 달성군(達成郡) 가창면(嘉昌面) 용계동(龍溪洞)으로 왔는데 여기서 거주하면서 1984년 교회에서 척추마비장애자(脊椎痲痺障碍者)인 현 남편인 정운대씨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만남을 거듭하면서 성장시절의 눈물겹던 역정(歷程)을 듣고 비록 불구자이긴 하지만 모진 역경을 참고 이겨낸 그의 의지가 굳고 의욕에 불타고 있음에 감동하였다. 

박여인(朴女人)은 사회의 냉대(冷待) 속에서 소외되어 가는 그를 구출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님의 반대(反對)도 무릅쓰고, 1987년 4월에 그와 결혼하였다. 처음에는 주위에서 처녀가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고 아이도 낳을 수 없는 장애자(障碍者)에게 시집간다고 여간 마음 아파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미친 사람이라느니,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여자가 아니냐는 등, 비난의 소문이 나돌기도 하였으나, 누가 뭐라 해도 내 남편과 시부모(媤父母)님만 믿어 준다면 그만이라고 다짐하고 내조에 진력(盡力)해 왔다. 

남편은 불구를 이겨내기 위해 일찍이 역도(力道)에 뜻을 두고 각고(刻苦)의 노력 끝에, 1985년 전국 장애자(障碍者) 체육대회 역도 라이크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연거푸 1986년에도 역도 페드급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는 불요불급(不要不急)의 의지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남편의 일로서 한(限)없이 반갑고 자랑스러우며, 앞으로도 계속 힘닿는 데까지 뒷바라지를 할 각오이다. 

한편, 넉넉지 못한 가정을 꾸려가기에 어려운 일이 여간 많지 않았으나 그의 시부모(媤父母)님에 대한 효심(孝心)은 대단하기만 하였다. 

불구의 남편이라 사소한 일에서라도 시부모(媤婦母)님께서 서운해 하실까봐 늘 걱정이 되어 일 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조심조심 하면서 지성으로 시봉(侍奉)하고 있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봉사자인 박여인(朴女人)에게 뛰어난 효열부(孝烈婦)라 하여 오늘도 주위에서 격찬의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으니, 그들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