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임경자(林慶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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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1988년 4월 22일)
효행상(孝行賞)
대구직할시 달서구 송현2동
효부(孝婦) 임경자(林慶子) 48세

임경자(林慶子)여사(女史)는 교직자인 남편을 도와 가며 평소에 근검절약(勤儉節約)과 절제(節制)하는 생활을 신조(信條)로 지극한 정성으로 시부모(媤父母)를 모시고 살아가고 집안의 어른이신 시모(媤母)님을 중심으로 일을 처리하는 화목하고 질서정연한 가정으로 소문이 나 있다. 

중풍으로 거동도 할 수 없는 시모(媤母)이지만 사소(些少)한 일이라 할지라도 여쭈어 의논하고 허락이 있어야 처리하는 것이 몸에 익어서 그의 자녀들까지도 할머님 말씀이 있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이러한 태도가 생활화되어 있다. 

8년 동안이나 식사를 떠 먹여 드리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옷가지나 이부자리도 깨끗이 빨아드리며 시모(媤母)님 방의 청소도 항상 깨끗이 하면서 임여사(林女史)는 불평이란 아예 없었고 오직 쾌유(快瘉)만을 빌면서 간호(看護)할 뿐이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선 할머님에게 인사 드리는 일도 잊지 않고 지도하는 등 효도(孝道)에 힘쓰도록 교육하여 아이들도 어머니를 따라 교화(敎化)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산 교육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남편 황기연씨가 교직생활을 하면서 받아오는 박봉(薄俸)으로, 중풍으로 와병중(臥病中)인 시모(媤母)님 약값으로, 한편으로는 대구 식의 생활비로 쪼개 쓰면서도 시모(媤母)님이 오래도록 병(病)에 시달려 기력이 쇠(衰)하여졌으니, 보신이 앞서야겠다고 판단되어 인삼을 사서 달여 드리는 등 그의 지극한 효성(孝誠)에 주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남들은 모두 봄놀이나 가을놀이를 가지만 병석의 시모(媤母)님의 시봉(侍奉)이 걱정되어 못 가는 처지였다. 

그런데 한 번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놀이를 가게 되었는데 15살 난 아들의 학교의 점심시간에 잠깐 집으로 달려와서 어머니가 하던 할머니의 시중을 들 정도이니 이것으로도 자녀들도 임여사(林女史)의 효성(孝誠)에 감화되어 있음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겠다. 

임여사(林女史)의 부지런하고 절약하는 습성은 주위에 조그만한 공지(空地)라도 있으면 이용하여 채소라도 심어서 가계에 보탤 정도로 억척이기에 박봉(薄俸)인 남편도 걱정을 들 수가 있었다. 

이것 또한 내조(內助)에 공헌(貢獻)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와병중(臥病中)인 노시모(老媤母)를 정성껏 간호 시봉(侍奉)하고, 자녀에게 충효의 산 교육을 실시하며 내핍(耐乏)으로 내조의 공(功)을 쌓고 있는 임여사(林女史)야말로 쇠퇴일로(衰退一路)에 있는 전통윤리(傳統倫理)를 지켜나가는 파수병(把守兵)이라 할 수 있으니 원근(遠近)에서 찬사의 메아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