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윤춘자(尹春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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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1988년 4월 22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점촌시 점촌
효녀(孝女) 윤춘자(尹春子) 33세

‘보화(寶貨)는 쓰면 다함이 있고 충성과 효도는 누려도 다함이 없느니라’는 옛 성현(聖賢)의 말씀을 생활신조로 삼아 부모에게 효도하고 23년째 와병중(臥病中)인 어머니와 태어나면서부터 정신박약아인 23살 난 여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스스로의 결혼도 뒤로 미루고 헌신(獻身)하는 등, 몸소 효(孝)의 실천과 가정의 화목을 위하여 진력(盡力)한 보기 드문 효녀(孝女)가 있으니 그가 바로 윤춘자(尹春子)씨이다.

윤(尹)씨는 1956년(年) 아버지 윤복이(尹卜伊)씨의 2남 3녀 중의 장녀로 태어나 여느 가정에서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자랐는데, 지금부터 23년전인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자기 어머니가 중풍(中風)으로 쓰러졌다.

지금부터 23년전인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자기 어머니가 중풍(中風)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전매청에 근무하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치료와 간병(看病)에 백방(百方)으로 노력을 경주(傾注)하였으나 효험(效驗)을 보지 못하였다.

따라서 가정형편은 날로 어려워지고 당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오빠의 뒷바라지와 불구(不具)인 여동생의 보살핌을 위하여, 윤(尹)씨는 부모의 슬하(膝下)에서 응석을 부릴 나이인데도 직접(直接) 가사(家事)를 돌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의 배려(配慮)로 지각·조퇴 등을 해가면서 병간호와 집안 살림을 꾸려갔으나, 어머니의 병은 차도(差度)가 없고 날로 심하여지니 중학교 졸업으로 학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1년 동안을 가사(家事)와 간병(看病)에 전념하였으나, 향학(向學)의 불길을 끄지 못하고 주위의 권유와 격려에 힘 입어 문경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에 힘겹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병중의 모친을 간호함에 있어 언제나 한 치의 빈틈도 없이 효성(孝誠)을 다하였다.

그러나 병(病)은 날로 악화되어 6년 전부터는 정신이상증세(精神異常症勢)에다 언어장애(言語障碍)와 사지(四肢)까지 완전히 마비되어 식사를 떠 먹이고 대소변을 받아 내야 하기까지 되었으니, 출천지효(出天之孝)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윤(尹)씨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짜증 한 번 내는 일 없이 웃는 얼굴로 어머니를 대하고 있다.

한편으로 23살의 정신박약자(精神薄弱者)인 여동생을 위하여도 불편 없이 따뜻하게 간호를 해 주고, 이따금 외로움을 달래 주기 위해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시장구경 등을 시키며, 나란히 다정하게 걸어가는 자매간(姉妹間)의 우애(友愛)는 마치 천사(天使)와도 같았다.

이런 역경을 감수(甘受)하며 자신을 돌보지 않는 지극한 효성과 동기간의 우애는 실로 타의 귀감(龜鑑)이 되며, 허물어져 가는 사회윤리로 보아 최후의 보루(堡壘)같은 믿음직한 생각에 뜨거운 격려를 보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