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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금례(尹今禮) 여사(女史)는 1961년 21세 때 김태수씨와 결혼해서 1남 2녀를 두고 가난하지마는 화목(和睦)한 가정을 이루고 단란하게 살아왔다.
남편 김씨는 공사장에서 노동일을 마치고 처음엔 피로를 푼다면서 한 두잔씩 마시던 술이 점점 늘어서 나중에는 술을 이기지 못해 길거리에서 잠자고 있는 것을 손수레로 태워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남편은 술을 끓을 생각은커녕 더욱 양이 늘어갔다.
윤여사(尹女史)는 남편의 건강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남편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진찰을 받아 보았더니 간경화증에 고혈압(高血壓)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윤여사(尹女史)는 남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결혼 때 받은 패물(佩物)을 팔고 그 동안에 모아두었던 돈을 긁어 모아 병원과 약국을 찾아 다녔으나 얼마가지 못해 약을 계속 지어드릴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남편의 병을 고쳐 보겠다고 결심한 윤여사(尹女史)는 동네에서 벽돌을 찍는 공장에서 막노동을 시작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이틀 일하고 사흘 몸살을 앓아야 했고 시멘트 가루로 인해 손과 얼굴이 거칠어지고 일이 힘에 겨워 코피를 흘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윤여사(尹女史)는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남편의 병만 낫는다면 하는 일념으로 참고 견디어 내었다.
노임을 받으면 남편의 약부터 구입하고 남편이 약을 복용할 시간이 되면 일하다가도 잠시 집에 가서 약을 먹이고 하면서 지성(至誠)으로 간호(看護)했다.
병들어 자리에 누워있는 남편은 아내의 정성을 고맙게 여기고 고생하는 아내를 안타깝게 여겨 고맙다는 말을 수 없이 했다.
그때마다 윤여사(尹女史)는 아내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할 뿐이라며 남편을 위로하고 쾌유(快癒)를 빌었다.
윤여사(尹女史)도 날로 몸이 쇠약해지고 일이 너무 고되어서 다른 일자리를 구해 볼까도 했으나 남편의 약값을 충당할만한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병구완(病救援)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데 병은 점점 짙어져 마침내 작년(1989년) 3월, 12년 간의 긴 투병생활(鬪病生活)을 마감하고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윤여사(尹女史)는 이제 남은 일은 1남 2녀를 훌륭하게 양육해서 그간의 고통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오늘도 고된 노동을 하고 있다.
윤여사(尹女史)의 남은 일생에 만복이 깃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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