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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자라났으나 고등교육을 받고 22세 때 대구로 출가(出嫁)한 최산호(崔山湖) 여사(女史)는 결혼 초부터 중풍으로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거동도 못하고 누워 계시는 시할머니 송영자(74세)를 돌아가실 때까지 5년 동안 한결같이 식사의 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면서 극진(極盡)히 모시었다.
1973년 시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 그 이듬해 74년에 홀로 계시는 시아버지가 적적하게 소일하시는 것을 위로하기 위해서 재혼을 시켜 드리고 정성껏 모시었으나 뜻이 맞지 않아 이혼하게 되어 다시 이번에는 이웃에서 의지할 곳이 없는 할머니를 모셔다가 시아버지와 함께 사시도록 살림을 차려드리고 아침 저녁으로 문안 드리며 불편한 점이 없는가 수시로 점검하고 항시 시부모(媤父母)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있으며 해마다 시아버지의 생신 날에는 동네 어른들을 집으로 초청(招請)하여 생일잔치를 열어 노인들의 하루를 즐겁게 해 드리고 있다.
1983년 여름에는 시부모님의 친구 40여명을 초청하여 삽교천으로 효도관광을 시켜 드려 주민들로부터 효부라는 칭찬을 받고 있다.
최여사(崔女史)는 또 자주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족들과 함께 외식(外食)을 하기도 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시부모님의 무료함을 덜어 드리기 위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 드리는 등 시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서 온갖 정성(精誠)을 다하고 있다.
1974년부터 수성 1가 부녀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해마다 관내 노인 1천여명을 초청해서 경로잔치를 베풀고 이웃 노인들을 자기의 부모처럼 정성껏 공경(恭敬)하고 1985년부터는 수성구 부녀회장직을 맡아서 관내의 경로당을 수시로 방문하여 노인들을 위로하는 등 몸소 경로 효친사상을 실천하고 있다.
핵가족시대에 우리의 미풍양속인 경로 효친사상(孝親思想)이 퇴색해가고 있는데 최여사(崔女史)는 신혼 초부터 중풍으로 누워있는 시할머니의 손발이 되어 병구완을 했고 시아버지를 재혼시켜 살림을 차려 드리고 정성껏 모시고 시아버지의 친구들과 이웃 노인들을 효도 관광시켜 드리고 경로잔치를 베풀고 자녀 교육과 집안의 화목에 힘쓰는 보기 드문 효부로서 윤리도의(倫理道德)가 무너져가는 이 시대의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이라고 칭송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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