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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연(金基連) 여사(女史)는 1977년 22세 때에 김우명씨와 결혼하여 15년 동안이나 시부모(媤父母)의 병구완을 하면서 극진(極盡)히 모시고 살아왔다.
김여사(金女史)는 위로 맏이와 둘째가 있고 셋째 며느리이면서도 시모(媤母)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10년 동안 중풍으로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거동이 불능한 환자의 병구원(病救援)을 해 왔다.
식사의 시중은 말할 것도 없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옷과 이부자리의 세탁 등 어렵고 힘드는 일을 하루같이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지극(至極)한 정성(精誠)으로 간병(看病)하였다.
김여사(金女史)는 또 8순의 시부(媤父) 이은철씨가 6년 전부터 신경통으로 거동이 불편하여 자리에 몸져 눕게 되자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유명한 의원(醫院)과 약국(藥局)을 찾아 다니면서 좋다는 약을 구해 와서 달여 드리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자주 목욕을 시키는 등 눈빛만 보아도 어디가 어떻게 편찮으신가를 짐작할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정성껏 간호한다.
막노동을 하는 남편의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시아버지의 약값을 충당하고 가계를 꾸려가기가 어려워서 김여사(金女史)는 파출부(派出婦) 생활을 하면서 살림을 돕고 있는데 근검절약(勤儉節約)하고 검소하고 알뜰하게 푼푼이 돈을 모아 평소에 시부(媤父)님이 즐기는 음식을 장만해 드리고 생신 때에는 마을의 노인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음식을 대접하고 병석에 누워계시는 시부(媤父)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드리고 이웃 노인들을 즐겁게 해 드리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인 미풍양속(美風良俗)이 무너져 가고 경로효친 사상이 날로 쇠퇴(衰退)해가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맏며느리도 아니고 셋째 며느리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15년이라는 장구(長久)한 세월을 시부모님이 병구완을 하면서도 불평을 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기 드문 효부(孝婦)라 하겠다.
더욱이나 금전만능시대에 파출부(派出婦)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난한 생활환경 속에서도 꿋꿋한 의지와 인내로 화목(和睦)한 가정을 이루고 단란하게 살아가면서 항상 명랑한 얼굴로 이웃 어른들에게 친절하고 공손(恭遜)하며 시부모님을 극진히 봉양(奉養)하고 자녀들의 교육에도 소홀함이 없으니 요즘 젊은 부부로서는 보기 드문 효부(孝婦)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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