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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이(金玉伊) 여사(女史)는 1968년 20세 때에 김진만(金鎭晩)씨와 결혼하였는데 70년에 남편이 월남(越南)에 파병(派兵)되자 제대할 때까지 가난한 살림을 혼자의 힘으로 꾸려 나갔던 것이다.
남편이 제대한 후 얼마되지 않아 하반신이 마비(장애2급)되어 노동(勞動)을 할 수 없게 되자 김여사(金女史) 혼자의 힘으로 가계를 꾸려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김여사(金女史)는 남편의 병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하였다.
병원치료를 받았으나 회복불능 2급장애인으로 판명되자 민간요법으로 좋다는 약을 수소문해서 구해다가 복용해 보았으나 별다른 효험(效驗)이 없었다.
그런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시아버지가 노환(老患)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김여사(金女史)는 생계를 위해서 행상(行商)을 해야하고 시아버지와 남편의 병수발도 들어야 하기에 그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김여사(金女史)는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이렇게 어려운 병간호(病看護)를 1년이 넘도록 자기 몸을 희생(犧牲)해 가면서 두 사람을 위해서 헌신(獻身)했다.
김여사(金女史)의 이러한 지극(至極)한 정성(精誠)도 아랑곳 없이 백약이 무효(無效)로 시아버지께서는 1년 후에 세상을 떠났으나 남편의 간병(看病)은 죽을 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여사(金女史)는 시아버지와 남편에게뿐만 아니라 시어머니에게도 효성이 지극하여 아침 저녁으로 문안 드리고 장사하러 갈 때에는 반드시 고하고 들어와서는 오늘 있었던 일을 아뢰고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이나 과일을 대접하고 시어머니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서 온갖 정성(精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효행(孝行)을 지켜본 친척들이 김여사(金女史)의 효심에 감복(感服)하여 조금씩 돈을 모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마련해 주었고 김여사(金女史)는 참기름 행상을 하여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김여사(金女史)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자녀들도 모두 착하고 할머니께 효도(孝道)하고 아버지를 존경하며 생활하고 있다.
이와 같이 김여사(金女史)는 남편이 2급장애인으로서 생활능력이 없고 평생 간병을 해야하는 처지에 놓여 있어도 불평하거나 누굴 원망하지 않고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자녀 교육(敎育)에 힘써 집안을 화목(和睦)하게 이끌고 있으니 지역주민들이 모두 효부(孝婦)라고 칭송(稱頌)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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