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문우동(文愚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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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1994년 4월 21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금릉군 부항면
효자(孝子) 문우동(文愚東) 25세

문우동(文愚東)군은 삼도봉(경북·충북·전북의 경계)아래 산간벽지 마을에서 태어나 1979년 5월 그가 9세 때에 아버지의 심한 주벽(酒癖)과 생활고로 어머니가 이혼하게 되자 술주정과 방탕(放蕩)한 생활로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를 모시고 어린 동생과 두 여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가사를 돌보아야 했다.

문(文)군은 학교에도 다녀야 하고 집안 살림도 맡아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밥짓고 빨래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남의 집 쇠꼴도 베어주고 산에 가서 약초(藥草)도 캐고 산나물도 채취하는 등 손발이 부어 터지도록 일을 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문(文)군 아버지 문재만씨는 심한 술버릇과 이혼(離婚)의 충격으로 더욱 타락하여 무위도식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1990년 여름에 골수염(骨髓炎)과 관절염(關節炎)으로 입원했고 병이 점점 짙어져서 그 해 겨울에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문(文)군은 다리가 없는 아버지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아버지를 봉양(奉養)하고 있다.

보통사람 같으면 아버지를 원망하겠지마는 문(文)군은 아버지의 화장실 출입과 외출을 도와 드리면서 조금도 짜증을 내거나 불평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면서 가계를 꾸려가고 있다.

이러한 문(文)군을 옆에서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은 그의 효심(孝心)과 성실함에 감탄하고 있다.

그리고 문(文)군은 가장 노릇을 하느라고 상급학교에 진학(進學)하지 못했기 때문에 틈틈이 혼자서 배우고 익혀서 김천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또 한번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굳은 의지와 근면성(勤勉性)그리고 역경을 헤쳐 나가는 불굴(不屈)의 정신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문(文)군은 산간벽지(山間僻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부터 가장 노릇을 하면서 아버지를 모시고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했으며 다리를 절단하고 다리가 없는 아버지의 다리 노릇을 하면서 독학(獨學)으로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마친 착실한 청소년 청년이다.

산업사회(産業社會)가 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을 팽개치고 도시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받고 있는데 문(文)군은 가난하고 어렵지마는 농촌을 지키면서 아버지께 지극정성으로 효도하고 있으니 요즈음 젊은이로서 보기 드문 모범 청년(靑年)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