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허순분(許順分)

페이지 정보

본문

제39회(1996년 4월 24일)
효행상(孝行賞)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면
효부(孝婦) 허순분(許順分) 65세

허순분(許順分) 여사(女史)는 김해허씨(金海許氏)의 가문에서 예절(禮節)과 부도(婦道)를 닦아 17세 때에 추억조(秋億祚)씨의 외동 아들인 추연찬씨와 결혼하였다.

결혼 당시 시댁(媤宅)은 전답 2천평과 소작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남편은 농사와 가정에 성실(誠實)하지 못하고 매일 술만 마시고 방탕(放蕩)한 생활로 전답(田畓)은 모두 남의 손에 넘기고 가정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허여사(許女史)는 시부모(媤父母)님을 모시고 슬하에 3남 3녀를 두어 대가족의 호구(糊口)를 위해서 농번기(農繁期)에는 소작농과 날품팔이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가지마는 춘궁기(春窮期)에는 손발이 피가 나도록 산과 들을 헤매어 나물을 뜯어다가 자식들과 자기들은 나물죽으로 연명(延命)하고 시부모님에게는 나물을 팔아서 진지상에 고기반찬을 대접하는 지극한 효성(孝誠)으로 봉양(奉養)하였다.

그러던 중, 1992년에 남편이 간암(肝癌)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허여사(許女史)는 수소문해서 간에 좋다는 약초를 구하기 위해서 칠봉산 준령(峻嶺)을 헤매고 민간요법으로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병간호(病看護)를 하였으나 93년 11월에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부모님은 외동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식음(食飮)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으니 허여사(許女史) 자신의 슬픔은 입밖에 내지도 못하고 미음을 끓여 드시게 하고 눈물로 시부모님을 위로하였다.

허여사(許女史)는 현재 다사면(多斯面)에서 최고령자(90세)인 시아버지와 시어머니(91세)를 모시고 아들과 자부(子婦), 그리고 손자 등 4대가 한 집에서 살고 있는데 시부모님께 조석으로 문안드리고 식사의 시중을 들고 청소와 통풍과 온기의 조절 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불편한 데가 없는가 챙겨 드리고 있다.

그래서 아들과 며느리도 허여사(許女史)의 본을 받아 효자(孝子), 효부(孝婦)이며 허여사(許女史) 자신의 나이도 65세인데 시부모님께 효도(孝道)하는 것 뿐만 아니라 경로당(敬老堂)에 나가서도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도우고 있으니 그의 앞날에 서운(瑞運)이 반드시 올 것을 비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