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김선순(金宣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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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1961년 2월 25일)
독행상(篤行賞)
봉화군(奉化郡) 소천면(小川面) 임기리(林基里)
효부(孝婦) 김선순(金宣順) 43세

70 노시부모(老媤父母)와 아들 3형제를 혼자 보살피고 있는 효부(孝婦). 

남편은 6·25동란 당시 인민군에 학살당했다. 산기슭에 화전(火田)을 일구어 마련한 농토는 옥수수, 감자, 고구마 재배가 고작이었으며 이 양식마저 3개월 분 식량밖에 되지 않았다.

여자의 몸으로 깊은 산속에 들어가 화전을 일구었으나 경작이 어려운데다 산짐승들의 피해가 심해 부족한 식량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金씨는 이웃집에서 돈 1만원을 빚내 봄과 가을에는 야채 행상, 여름과 겨울에는 생선행상을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봉화 읍내에서 어물을 받아다 면·민들에게 팔았으며 농민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읍내에 넘겼다. 하루 80리 길이었으나 수입이 좋아 피곤한 줄을 몰랐다. 

80 시부모(媤父母)는 며느리의 고생이 보기 딱했던지 5백 평의 화전을 돌보며 도움을 주었다. 金 씨는 행상 때문에 시부모(媤父母)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죄스러움으로 가슴이 아파 노시부모(老媤父母)를 편히 계시도록 화전을 팔아 버렸다. 3형제를 모두 고교까지 진학시키고 있으며 시부모(媤父母) 공양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