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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1961년 2월 25일)
독행상(篤行賞)
고령군(高靈郡) 성산면(星山面) 삼대동(三大洞) 469
효부(孝婦) 노소석(魯小錫) 34세
결혼한 지 3년이 되어도 자식이 태어나지 않아 그녀와 친정 부모(父母)들은 걱정을 태산같이 했다.
남편보다도 시부모(媤父母)를 볼 낯이 없어 아무도 모르게 절을 찾아 백일기도까지도 했다, 노(魯)씨의 이 같은 걱정과는 달리 시부모(媤父母)들은 가슴을 죄고 있는 며느리에게 언제나 웃는 낯으로 “언제인가는 손자를 보게 되겠지” 하고 안심을 시키곤 했다.
훗날 노(魯)씨가 젊음을 희생하면서까지 병든 시부모(媤父母)를 정성으로 모실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시부모(媤父母)들의 관대함과 인자함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편 이한상(李漢相) 씨는 51년 입대(入隊)한 후 그 해 가을 춘천(春川) 지구 전투에서 전사(戰死)했다.
시부(媤父)는 자식이 없이 과부가 된 며느리를 친정으로 되돌려 보내 재혼(再婚)하도록 강요 했으나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 외로운 시부모(媤父母)를 타계(他界)한 남편을 대신하여 모시겠다며 남편이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시부모(媤父母)를 보살폈다.
3년 전에는 시모(媤母) 유정렬(兪貞烈) 씨가 뇌졸중(腦卒中) 증세로 자리에 누운 후 기동을 하지 못하자 산속을 헤매 약초를 캐오기도 하고 친정에서 치료비를 얻어 오면서까지 정성으로 치료해 시모(媤母)를 회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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