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배용이(裵龍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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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1961년 2월 25일)
독행상(篤行賞)
상주군(尙州郡) 은척면(銀尺面) 평기리(平基里)
효부(孝婦) 배용이(裵龍伊) 21세

17세에 결혼해 지난해 남편과 사별(死別)했다. 

시부모(媤父母)와 세 자녀를 5백여 평의 전답(田畓)으로 먹여 살리기는 힘겨운 일이었다. 

게다가 80 고령의 시부모(媤父母)는 노환으로 병석에 있어 치료비마저 마련해야 했다. 남편 장례식을 치른 다음날부터 가족 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공사판에 뛰어 들었다. 

하루 2백 원의 낮은 임금이었지만 생활을 위해 어린 세 자녀를 병든 할머니에 맡겨두고 채석장(採石場) 일을 견디어 냈다. 얼마 안 되는 농사였으나 여자 혼자 힘으로 수확을 해야 했다. 

6개월 전부터는 시모(媤母)의 병이 위급해 노동일마저 포기한 채 약을 구걸하기 위한 나들이를 해야 했으며 심한 혹한(酷寒)에도 깊은 산속을 뒤져 약초를 캐왔다. 

시모(媤母) 병 시중으로 양식(糧食)이 떨어져 세 자녀를 이끌고 구걸 행각을 나서면서도 한 번도 절망하지 않고 밝은 표정으로 귀가해 시부모(媤父母)를 위로했다. 

그녀의 끈질긴 집념과 꺾이지 않는 용기는 쓰러져가던 가문을 조금씩 회복시켜 가고 있다. 시모(媤母) 병도 裵씨의 정성 어린 간호로 위기를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