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백철기(白鐵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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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1961년 2월 25일)
독행상(篤行賞)
달성군(達城郡) 논공면(論工面) 금포동(金圃洞) 1805
효자(孝子) 백철기(白鐵基) 44세

일제(日帝) 때 살길을 찾아 만주(滿洲)로 떠났으나 비참한 만주(滿洲) 생활은 어머니를 장님으로 만드는 비극의 원인이 됐다. 

심한 중노동과 영양실조로 어머니의 시력(視力)이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해방되기 바로 전 해에 시력을 잃었다. 

해방과 함께 눈먼 노모(老母)를 업고 고향에 돌아온 후 벌어 둔 재산이 없어 품팔이로 9인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白씨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어머니의 시력을 회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가족이 주(週) 두 끼 정도 끼니를 굶기로 하고 소양과 닭을 주(週) 1회씩 삶아 드렸다. 

소양과 닭이 시력을 회복시키는데 큰 효과가 있다는 한의사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2년 전 8월의 일이었다. 평소와 같이 노모(老母)의 치료약으로 닭 한 마리를 구입해 노모(老母) 방에 넣어 두었는데 노모(老母)가 담배를 피우려고 담뱃불을 잘못 켜 닭다리를 태웠다. 

비명을 지르는 닭을 들고 방을 나오던 노모(老母)는 마침 일을 나가려던 아들을 향해 “네 걸음걸이가 아버지를 닮았구나.”라고 놀라운 말을 하신 것이다. 15년간 계속된 효성(孝誠)이 노모의 시력(視力)을 회복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