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김복임(金福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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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1961년 2월 25일)
독행상(篤行賞)
선산군(善山郡) 선산면(善山面) 습례동(習禮洞) 384
효부(孝婦) 김복임(金福任) 46세

병든 시모(媤母)를 살리기 위해 전국의 명의(名醫)를 찾아 다니고 봉양(奉養)에 정성을 다해 죽음 직전에 있던 시모(媤母)를 살려낸 효부(孝婦)이다. 

金씨가 18세에 가난한 농부에게 시집을 왔을 때 시모(媤母)는 건강하고 며느리를 귀엽게 보살피는 다정한 가정이었다. 

시모(媤母)는 건강한 아들을 어린애처럼 다루면서 농사일을 직접 해내곤 했다. 건강을 돌보지 않고 지나치게 일에 열중하던 시모(媤母)가 어느 날 자리에 누운 후 일어나지를 못했다. 

남편은 어머니 병을 고치기 위해 약초를 캐고 명약(名藥)을 구해왔으나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6·25동란은 이 가정에 비극을 몰고 왔다. 어머니를 등에 업고 피난길을 나섰던 어느 날 양식(糧 食)을 구하러 나간 남편이 인민군(人民軍)에게 붙잡혀 총살당하는 불행이 덮쳐온 것이다. 

남편 대신 시모(媤母)를 등에 업고 귀가한 金씨는 얼마 되지 않는 농토를 손수 경작하면서 시모(媤母)의 병 치료에 정성을 쏟았다. 

서울, 부산(釜山), 대구(大邱), 대전(大田)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모(媤母) 병 치료를 한 결과 발병 10년 만에 죽음 직전에서 회복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