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위생(李渭生)

페이지 정보

본문

제4회(1961년 2월 25일)
독행상(篤行賞)
군위군(軍威郡) 고로면(古老面) 석산리(石山里) 989
열녀(烈女) 이위생(李渭生) 53세

18세 때 결혼했으나 남편은 결혼 2년 만에 훌쩍 집을 떠난 후 일본(日本)에 건너가 소식을 끊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시부모(媤父母)를 떠맡은 李씨는 소식 없는 남편을 기다라며 외로운 고행을 20년간이나 견디어 내고 있다. 

청춘을 혼자 견디어 내기는 힘겨웠지만 살기 위해 성실하게 일하고 시부모(媤父母)를 정성껏 보살핌으로써 세월의 흐름을 무관심하게 넘길 수 있었다. 

남편이 손발을 못 쓰는 폐인(廢人)이 되어 귀가한 것은 40대 중년기에 들어선 때였다. 20년간이나 소식을 끊었던 남편이 무일푼의 거지꼴로 찾아오던 날 李씨는 한이 맺혀 외면했으나 병든 남편을 버려둘 수는 없었다. 

李씨는 다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어물 행상으로 남편의 치료비를 벌면서 미친 사람처럼 거칠어진 남편의 학대를 달래야 했다. 

남편은 李씨의 정성 어린 치료와 간호로 10년간을 고향에서 편안하게 지탱하다가 지난해 숨졌다. 

알뜰하게 재산을 모은 李씨는 고아원에서 양자를 입양(入養)하여 남은 여생을 다시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