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윤한(李潤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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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1961년 2월 25일)
독행상(篤行賞)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의촌동(宜村洞) 14이
효부(孝婦) 이윤한(李潤漢) 35세

18세 때 가난한 농부에게 시집을 왔다. 

소작농으로 힘겨운 생활을 해온 남편은 건강이 좋지 못해 자주 병상에 누워 있곤 해 남편을 대신해서 농사일을 맡아야 했다. 

李씨가 살고 있는 마을은 전통적으로 유교(儒敎)사상이 뿌리 깊게 심어져 있는 보수적인 마을이어서 아녀자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일터에 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살기 위해 주위의 힐난(詰難)을 못 본 척 해야 했다. 

70 고령의 시부(媤父)는 며느리의 결사적인 생활태도를 잘 이해해 주었다. 후에 마을 사람들도 李씨를 모두 억척같은 여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가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생활태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부(媤父)에 대한 극진한 효성, 단정한 용모, 겸손한 태도와 언어 등 그녀의 행실은 나무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시부(媤父) 문안을 올리고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하루 세끼 더운 식사와 별식을 장만하는 李씨의 효성(孝誠)은 남다른 것이었다. 17년 동안 가정에서 화난 표정을 지어본 적이 없으며 이웃 간에도 다툰 일이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