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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분(李順粉) 여사는 허춘(許春) 씨와 결혼하였는데 시집을 와서 보니 시댁(媤宅)은 생계 유지조차 어려운 형편이었다.
시부는 거동불편으로 늘 타인의 보호를 받아야 했고, 시모 또한 신경통으로 농사일을 거들 수 없는 상태여서 신혼생활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새댁의 몸으로 바쁜 농사일로 결혼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1989년 시부의 지병(持病)이 치매로 악화되자 건강이 나쁜 시모를 대신해 시부를 간병함에 있어 치매환자의 특성상 불결한 상태에서 생활하게 될 수도 있으나, 하루에도 수차 의복을 갈아 입히고, 목욕, 빨래를 깨끗이 하는 한편, 치매에 좋다는 약이 있으면 천리길도 마다 않고 구약시탕(求藥侍湯)에 정성을 다 하였으나 효험은 없었고 생계는 더욱 어려워만졌다.
그나마 생계유지를 가능케 해주던 청궁(약초) 농사도 중국약재의 수입으로 판로가 어렵게 되자 이에 중심을 잡지 못하는 남편은 점차 음주벽이 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李) 여사는 낙담하지 않고 청궁 대신 미역취 농사를 지으며 고된 생활 중에도 늘 밝은 얼굴로 시부모를 지극정성으로 간병하였다.
99년도 오랜 투병생활 끝에 시부께서 며느리의 정성 어린 병수발을 한 보람도 없이 돌아가시자 자신의 불효로 시부를 일찍 돌아가시게 했다면서 예(禮)를 다하여 상(喪)을 치루고 아침저녁으로 곡(哭)을 하고 한편 홀로 되신 시모의 신경통 또한 연령(年齡)관계로 악화가 되어 고생하심에 정성을 다하여 병수발을 들고 있다.
이(李) 여사는 신혼 초부터 어려운 가정형편에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으며, 한평생을 병약(病弱)한 시부모 구환(救患)을 위하여 자신의 생을 희생(犧牲)해온 효부(孝婦)로서 숭고(崇高)한 그의 효행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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