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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희(趙貞姬) 여인은 안동시 서후면에서 빈농(貧農)의 2남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계(家計)가 더욱 어려워 어머니와 함께 자수 바느질로 생계를 도우다가, 1990년 24세 때 이승기 씨와 결혼하였다.
시가(媤家)는 비록 가난한 농가였으나 온 가족이 효성있고 화목한 가정으로 시모는 남편과 사별후 청상(靑孀)으로 수절(守節)하면서 시어른을 극진히 봉양하여 군수, 면장으로부터 3회나 효행상(孝行賞)을 받은 보기 드문 효부였다.
이와 같은 모친의 효행을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남편 이승기 씨도 12세 때 부친을 여의고 지금은 축협기사(畜協技士)로 봉직(奉職)하면서 시조부모님과 모친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다.
어릴 적부터 효심이 두터운 조(趙) 여인 역시 남의 집이나 공장일 등을 가리지 않고 하면서도 지극정성으로 시조부모님을 봉양하고 있다.
평소 두 분이 단 것을 좋아하시므로 사탕과 단술을 끊이지 않고 해 드리고, 밤이면 이부자리를 보아 드려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집에서 물을 데워 목욕도 자주 시켜 드리며, 이발과 용변처리 등 한 치의 소홀함이 없이 시봉(侍奉)하였다.
그러나 그 보람도 없이 99년 9월 시조부께서 향수(享壽) 86세로 운명하시자 장례(葬禮)기간 중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도 초종범절(初終凡節)에 따라 상(喪)을 정중히 치루었다.
이제 홀로 계시는 시조모님도 지병(持病)으로 거동이 어려우나 안방에 모셔 식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의복, 목욕 등 정성을 다해 수발하고 있다.
시모님께도 항시 가내 대·소사를 의논드리고 행하며, 시동생·시누이와 4대가 한 집에 살면서 비록 살림은 비록 넉넉지 못해도 항상 화목(和睦)하게 지내고 있음을 본 동리사람들 모두가 효부(孝婦) 집에 효부(孝婦) 났다고 극찬을 하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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