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오점분(吳点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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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회(2000년 4월 26일)
효행상(孝行賞)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효부(孝婦) 오점분(吳点粉) 49세

오점분(吳点粉) 여인은 고령군 우곡리 오씨문중(吳氏門中)에서 출생하였으며, 21세가 되던 해에 최종열(崔宗烈)씨와 결혼하였다. 

결혼 당시 남편은 시부모를 모시고 농사를 짓고 있었으며 넉넉지는 않았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오(吳) 여인도 남편과 힘을 합하여 근농을 하면서 슬하에 2남을 두고 시부모님께 효도하면서 생활하였다.

10년전 아이들 학업관계와 남편의 직장 관계로 대구로 이사온 후에 남편은 직장에 다녔고, 오(吳)여인은 시부모를 봉양(奉養)하며 생활하던 중 시모께서 뇌졸중으로 인한 중풍으로 마침내 병석에 눕게 되었다.

병의원에 모셔다 치료도 하고 민간요법의 조약(造藥)으로도 시탕(侍湯)하며 지극정성으로 구환(救患)하였으나 보람도 없이 병세는 악화되어 오른쪽 반신(半身)이 마비되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오(吳) 여인은 잠시도 시모 곁을 떠나지 않고 병수발을 하였으며, 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평소 좋아하는 음식(飮食)을 장만하여 드시게 하고, 소외감을 느낄까봐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소식도 전하며 말동무도 되어 드렸다.

그 뿐만 아니라 목욕, 세탁, 청소 등을 자주하여 시모님의 방을 깨끗하게 해 드리고, 특히 마비된 몸을 주물러 드리는 등 10여년 동안이나 시모님을 간병하면서 단 한번도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없었다.

이를 본 주위의 사람들과 일가친척 모두가 극찬을 하고 있다 한다.

슬하의 형제들도 어머니의 이러한 효행(孝行)을 평소에 보고 자라 할머니와 부모에게 효친(孝親)을 실천하고 있다 하니, 오(吳) 여인이야말로 요즘 세태에 보기 드문 효부(孝婦)이자 현모양처(賢母良妻)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