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소경애(蘇慶愛) 여사는 의성군 구천면에 거주하던 소병화씨의 5남 4녀 중 3녀로 태어났다.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가정이었으며 보통학교를 나와 대구고등성경학교를 졸업하였다.
소(蘇) 여사는 성품(性稟)이 온유겸손(溫柔)謙遜)하고 가정 교육도 엄격히 받아 현모양처(賢母良妻)의 부덕(婦德)을 닦으며 성장하였으며, 19세 때 같은 고향의 일선김씨(一善金氏) 문중 김재봉(金在鳳)의 장남 승율(承律) 씨와 결혼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남매(媤男妹) 4남 2녀와 슬하 8남매의 자녀를 양육하는데 온갖 심혈을 기울였고, 시부모 봉양(奉養)에도 정성을 다 하였다.
이와 같이 집안 사정이 어려운 가운데도 고아원에서 불쌍한 여아를 데려다 키웠다. 이 딸도 친자식 못지 않게 해서 시집을 보냈는데, 현재 사위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거기에 외손 3명이 있는데 이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라 행여나 손주들이 알면 상처받을까봐 극비에 돌리고 있다.
소(蘇) 여사는 시(媤) 6남매와 자녀 8남매를 교육자, 사업가, 의사 등으로 성장시켜 한 사람도 어긋난 길을 걷지 않았고, 사회 각계에서 모범적 인재로 활약하고 있다 한다.
소(蘇) 여사는 19세에 시집와서 77세까지 59년째 다섯 시남매와 아홉 자녀를 다 성취(成娶)시키고 80세에 가까운 노부부가 95세의 시모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다.
시모님은 노환으로 두 달째 몸져 누워 처음 4, 5일간은 혼미(昏迷)상태더니 며느리의 지극한 간병에 정성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등창이 나서 누이고 일으키고 하면서 치료하고 식사수발에서부터 배설물(排泄物) 처리, 목욕, 세탁. 청소 등등을 하면서 절대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녹음기로 찬송가를 들려 드리며 시모님의 마음을 안정시켜 드리고 있다.
젊어서는 동네나 교회에서 봉사생활이라면 솔선수범(率先垂範) 많은 선행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처럼 연로하여 섬김을 받을 나이에 아직도 대접받기보다 섬기기를 자처하는 소(蘇) 여사야말로 이 시대에 보기 드문 효부로 모든 사람들의 귀감(龜鑑)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이전글제43회 보화상(補化賞) 본상(本賞) 장위숙(張渭淑) 25.07.01
- 다음글제43회 효행상(孝行賞) 강정애(姜貞愛) 2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