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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숙 여사는 명문 인동장씨의 후예인 장희덕씨의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총명하고 유순하여 부모로부터 귀여움과 부도의 엄격한 교훈을 받고 성장하였으며, 1980년 한양조씨 종손인 조동술 씨와 결혼하였다.
시집을 와서 보니 시가는 시조모와 시부모가 계시는 층층시하였다.
종가집이지만 살림이 넉넉지 못하여 직접 농사에 참여하면서 시어른을 봉양하며 종부로서 수많은 제사와 접빈객에다 종중 제반 대소사를 치러야 했다.
장 여사는 이와 같이 어려운 속에서도 주부이자 종부의 책임을 근면성실하게 수행하며 생활해 오던 중 원채 고령이시던 시조모(93세)께서는 치매증이 와서 정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치매환자의 간병이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장 여사는 하루도 빠짐없이 세 끼 더운밥을 지어 드려 건강에 세심한 주의를 하는 한편, 치매환자에게 있게 마련인 냄새를 없게 하기 위하여 용변처리는 물론 청결, 목욕, 빨래 등을 자주 하여 항상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 입혀 드리고 뒷수발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이 정성을 다 들였다.
이렇듯 농사에다 종중의 일들을 처리하면서 생활하던 중 95년도에 갑자기 시조모보다 먼저 시모께서 돌아가시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설상가상으로 연이어 시부께서 중풍으로 전신마비가 되어 거동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장 여사는 중풍에 좋다는 약이 있다는 소문만 들으면 멀고 가까운 곳을 불문하고 구약시탕해 드리는 한편, 시조모와 같이 용변처리에서부터 식사수발, 목욕, 세탁, 청소 등 혼신의 힘을 다하여 간병에 힘쓰고 있다.
이렇듯 한 분도 아닌 두 분이나 되는 중환자이신 시어른을 간병하는 한편, 종부로서 해야 할 제반사를 거뜬히 수행하였다.
또한 온화한 품성으로 동리 노인들에게도 언제나 친부모처럼 공경하며 바쁜 농사철에도 집안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극진한 환대를 하여 이 집의 사랑방에는 언제나 손님이 끊이질 않고 있다니 장 여사의 후덕한 성품을 미루어 짐작케 하고 있다.
흔히들 오늘날의 세계를 가리켜 인간상실의 시대라고들 말하고 있다. 그것은 오늘의 생활상이나 산업구조가 고도로 기계화되고 과학화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이며, 또한 그릇된 개인주의나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구의 물질문명이 밀려오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정신문화인 전통윤리도덕과 미풍양속이 점점 허물어져 가고, 경로효친 사상이 날로 쇠퇴하여 건강한 시부모도 모시지 않으려는 여인들이 허다한 오늘날 고령의 시조모의 치매를 10여년간 또한 병중에서도 으뜸가는 난치병인 중풍을 5년 여간 앓고 계시는 시부의 간병에 지극정성을 다하고 있는 장 여사는 자아를 희생한 고난을 생각할 때 감히 작심으로는 행할 수 없는 출천지효부라 할 수 있겠다.
한 가정의 연약한 여인으로서 항상 남다른 성품은 검소하였고 모든 일에 지극히 충실히 행하였으며, 절약으로 일생을 살아가는 장 여사는 고래의 미풍양속에 순응하고 삼강오륜의 깃발 아래 경로효친과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해 보겠다는 강건한 신념의 실천가이기도 한 것이었다.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도 그녀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로서 항상 열심히 살고 있으며 이웃에 대해 후덕하며 어른들을 공경하며 남의 일을 내일처럼 생각하는 효행과 봉사정신 또한 투철한 분이다.
이와 같은 장 여사의 효행이 한양조씨 종중은 물론이고 감천면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며, 그의 효행을 칭찬이라도 하면 가정형편이 어렵고 성의가 부족하여 남들처럼 잘 모시지 못한다면서 도리어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장 여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라 하겠다.
장 여사는 종가집 종부로 시집와서 그 어려운 종가 제반사를 슬기롭게 처리해가며 생활하는 한편, 장기간 시조모와 시조부의 중환 간병에 자기 청춘을 희생해 온 요금 세대에 보기 드문 효부로 멀지 않아 그의 가정에 반드시 행운이 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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